미셸 호쉬씨는 프랑스의 제2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이 있는 수랭듀이 출신 지방의원으로 도의회 부의장이다. 그는 18년 전 수랭듀이가 방폐장 건설지로 선정되자 2년간 반대운동의 최선두에 섰다. 당시에도 지방의원이었던 그는 정부가 말하는 폐기물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2년 후엔 거꾸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앞장섰다. 안전성을 믿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수랭듀이를 찾아간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에 방폐장 건설이 돈과 일자리로 알려지자 그것이 수랭듀이에는 행운 같았지만 사실은 실수였다. 무엇보다도 안전성이 먼저 알려졌어야 했다." 그는 일반주민은 안전성으로, 각 마을대표(이장)는 경제효과로 설득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저준위 폐기물처리장에 이어 고준위 폐기물처리장까지 들어설 핀란드 올키루토 방폐장의 관계자들이 역설하는 것도 돈이 아니라 정보공개와 안전성 홍보였다. 그렇다고 프랑스나 핀란드 모두 방폐장 건설에 주민동의를 꼭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수랭듀이는 주민반대가 있을 때도 공사가 진행됐다. 17년간 부지를 찾아 유랑한 한국의 현실을 얘기하려는게 아니다. 그만큼 프랑스나 핀란드의 안전성 설득 노력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 부안사태는 그래서 황당하다. 충분하기는커녕 안전성 설득 시간과 노력이 있을 수 없었다. 돈으로 몰래 위도 주민의 동의를 얻은 뒤 부안 전체 주민들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들이민 것 아닌가. "아무도 받지 않으려는데 왜 우리냐"며 잔뜩 자존심이 상해 흥분한 주민에게 그때서야 "전문가들은 핵폐기물을 잘 처리해 보관하면 화학물질보다 더 안전하다고 한다"고 해보았자 들릴 리 없다.
■ 세계 30여개 원자력발전국 가운데 한국은 원자력발전량이 전체 전력생산의 40%를 차지하는 6위의 원전보유국이면서 방폐장 부지도 확보 못한 5개국 중 하나다. 환경론자들 주장대로 이제 와서 원자력발전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 방폐장도 필수이지만 길게 보아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민공감대가 중요하다. 방폐장이 급하니 우선 어디든 결정하고 보자는 식 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경제적으로 원자력발전이 필요하고, 폐기물도 영구적으로 안전하게 처리·보관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이 납득토록 해야 한다. 정부가 하기에 따라 방폐장(放廢場)이 원전과 폐기물에 대한 오해를 막아줄 방패장(防牌場)이 될 수 있다.
/최규식 논설위원 kscho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