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방송과 신문에 국내에서 벌어지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반대에 대한 격렬한 시위가 보도되면 이를 본 칠레 국민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진다고 한다.우선 칠레 보고 먼저 FTA를 하자고 해 놓고 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지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협상을 하던 지난 몇 년간 국내 이해집단 하나 설득 못하고 무엇 했느냐는 질책이다. 다음, FTA를 한다고 한국의 쌀시장이 개방되는 것도 아니고, 경쟁력 있는 칠레의 과일 중 사과, 배는 예외품목으로 빠지고 일부 시설포도농가의 피해만 예상되는데 왜 전국 규모의 농민단체들이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국농업을 뒤흔들 정도의 시장개방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농민희생'과 같은 엄청난 사회적 구호가 힘을 받느냐는 것이다.
2월 양국 정부가 서명한 자유무역협정안을 칠레하원은 8월에 비준했고 상원 재무위도 3일 만장일치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7월 초 국회에 제출된 비준동의안이 넉 달 넘게 잠자고 있다.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통일외교통상위와 농촌특별법을 다룰 농림해양수산위가 서로 먼저 처리 하라고 핑퐁을 치고 있는 것이다. 비난의 직격탄을 맞지 않겠다는 무소신 정치의 극치다.
어차피 치러야 할 진통이라면 금년 국회에서 비준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6월 미국과 칠레는 정부간 FTA에 서명한 뒤 미국은 7월에 상·하원 비준을 마쳤고 칠레 국회도 10월에 비준했다.
우리도 해를 넘기는 것 보다는 같은 해에 정부서명과 비준을 동시에 마치는 것이 국제사회에 비치는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정부, 정치권과 농민단체가 손을 잡고 국민전체와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해 합일점을 찾아야 한다.
우선 피해농가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져 한다. 멕시코는 '프로-캄포', 미국은 무역구조조정지원법에 의해 농업부문 피해를 보상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지원은 피해농가의 구조조정과 경쟁력을 지원할 수 있는 적정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명심해야 할 점은 이번 농민보상제도가 내년부터 협상을 시작할 일본과의 FTA에 선례가 된다는 점이다.
한·일 FTA를 하면 영세한 국내 중소부품산업에 엄청난 개방의 충격이 몰아쳐 노조, 중소업계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설 것이 뻔한데 잘못된 보상전례를 남기면 앞으로 정부는 두고두고 발목을 잡힐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농업은 좀더 전략적으로 FTA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칠레와 달리 농산물 수입 대국인 일본과 FTA를 하면 상당한 농산물 수출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국 농민들의 압력을 받는 일본정부가 앞으로의 협상에서 많은 농산물을 예외품목으로 하려고 할 것이라는 우려다. 지금부터라도 농민대표가 한일 FTA의 협상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한·칠레 FTA비준은 중남미시장의 첫 발을 내딛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부터 중남미진출 교두보로서 칠레를 적극 활용할 전략을 수립해야 하겠다. 우선 내년 가을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위한 우리 대통령의 칠레 방문을 계기로 가칭 '한-칠레 슈퍼 엑스포'를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경제·투자협력 차원를 넘어 문화, 예술 방면까지 포함한 양국간 대대적 행사를 통해 칠레에 한국붐을 일으키는 것이다.
안 세 영 서강대 교수 국제통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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