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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4년간 함께 뒹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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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4년간 함께 뒹군 아이

입력
200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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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돌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자기가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말고 책 쓸 동안 같이 굶어 보자고 했다. 아이도 아이였지만 아내가 밥벌이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못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그렇게 4년을 나는 아내와 아들과 한방에서 뒹굴었다. 아들은 워낙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해 남들은 꼭 자폐아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 탈없이 잘 컸다. 그런 아들이 여섯 살이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다가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왜 머리카락이 하얘?"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까 그렇지." 갑자기 침울해진 아들은 엄마에게 물었다. "그럼, 엄마도 머리카락이 하얘지면 죽는 거야?" "그럼 엄마도 언젠가는 죽고 말고."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끝내 밥을 먹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아들이 문득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이담에 머리카락이 하얘져서 죽으면 내가 앞마당에 해바라기를 심을 테니 비가 돼서 오세요. 그리고 나도 머리카락이 하얘져서 죽으면 우리 구름도 되고 바람도 돼서 같이 날아다녀요."

아내는 말문이 막혔다. 생전 누구한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아들이 해준 것이다. 아니 이 세상 그 누구한테도 들을 수 없는 말을 아들이 해준 것이다. 아마도 제 딴에는 엄마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며칠 동안 끙끙댄 끝에 그렇게 정리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들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아내는 4년을 한방에서 엄마 아빠와 같이 뒹군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 직장을 나가겠다던 자신을 말린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직장을 나갔으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야 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착하기만 한 아들은 정말 자폐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 정 록 한국고대문화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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