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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결손 민주주의"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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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결손 민주주의"의 극복

입력
200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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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 시대'를 마감하고 새 대통령을 선출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세모의 정국이 들끓고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낡은 정치의 청산' 과제에 매몰되어 미래를 향해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을 열어가야 할 새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형이 되기보다는 과거 정치의 구습을 설거지하는 구시대의 막내가 될 수밖에 없게 된 딱한 처지를 호소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는 결손 투성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역사는 3김 시대를 한국 민주화 1기로 기록할 것이다. 3김 시대의 민주화 업적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하였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였으며,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권리가 향상되었다. 국제적으로 3김 시대의 한국은 권위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아시아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3김 시대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결함이 많은 '결손 민주주의'(defective democracy)였다. 권력은 제왕적이었으며, 정당은 사당을 벗어나지 못했고,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았고, 국민은 지역으로 분열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3김 시대 이후의 민주주의 즉, 한국 민주화 2기를 여는 정치 행사였다. 국민의 의사는 분명하였다. 3김 시대가 성취한 민주화의 업적을 계승하되 3김 시대가 남긴 부정적 유산은 청산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라는 것이었다.

그간 '제왕적 대통령'은 사라지고 권력의 탈권위주의가 진행되었다. 대통령이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을 가지고 통치하던 관행을 버림으로써 야당, 언론, 시민단체들이 자유롭게 대통령을 비판하고 견제하고 있다. 이제 야당까지도 지나친 탈권위주의가 대통령직의 권위의 상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우려할 정도가 되고 있다. 정당도 민주화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지도부가 당원의 투표에 의해 상향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제왕적 총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초선의원이 당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결손 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기 초반부터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터져 나왔고, 지역할거주의 정치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치 수요자인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경쟁하는 정책정당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 공급자의 횡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불법대선 자금 문제가 터졌다. 2002년 대선이 한국 선거사상 가장 깨끗하고 돈이 적게 든 선거라고 믿고 있었던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정치권의 위약과 기만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불법선거자금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조폭들 간의 거래를 방불케 하는 불법 선거자금의 조달 방식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인들은 정치권에 대해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권은 위기의 계절을 맞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은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면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고, 이를 계기로 깨끗한 정치, 투명한 정치를 위한 제도개혁에 나서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상대 정당의 불법과 비리를 폭로하는 물타기 또는 맞불놓기 작전으로 나오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의 정치자금 개혁안에 대해 제한을 가하고 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에 대해서는 현상유지 방향으로 가는 등 기득권 지키기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의 인내가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 송구영신의 시간에 묵은 정치의 때를 벗어내고 새 정치의 틀을 만들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임 혁 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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