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따뜻한 연말을 맞고 있다. 이라크 상황악화로 곤경에 처해 있던 그에게 사담 후세인 생포 소식은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곤두박질하던 그의 지지도도 단박에 반등했다.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에서의 '후세인 효과'는 하루 만에 소멸했지만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시장에서 후세인 효과는 상당기간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부시 대통령은 15일 올해를 결산하는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초라한 포로 신세로 전락한 후세인을 마음껏 조롱하면서 승자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후세인 생포를 계기로 이라크 치안상황이 호전된다면 부시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후세인 생포의 효과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띠고 다가오고 있다. 후세인의 생포 이후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세가 한풀 꺾이고 이라크 치안상태가 나아지면 전투병 파병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라크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다면 유가 안정, 수출 환경 호전,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크게 유리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숙제인 북한 핵 문제로 눈을 돌리면 계산은 좀 복잡해진다. 존 울프스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최근 "이라크 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가 외교정책 수립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 핵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라크 상황 반전으로 북한과 핵 문제를 놓고 직접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면 북한 핵 문제 해결이 더욱 꼬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연내 2차 6자회담 개최가 물 건너간 배경에는 미 행정부 내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판이다.
후세인의 비참한 처지를 목격한 북한 지도부가 더욱 비타협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강경파는 김정일 위원장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 후세인처럼 된다는 교훈을 배우길 희망한다. 하지만 북한은 반대로 후세인처럼 되지 않으려면 결정적 억지력인 핵무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북한은 그런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오고 있다.
북미간에 강경한 입장이 맞부딪치면 6자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그 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긴장이 급격히 고조될 개연성이 있다.
물론 이와는 전혀 다른 각도의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은 그 동안 이라크 수렁에 빠진 부시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낙선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시간 벌기 작전을 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후세인 생포 이후 부시의 인기가 회복되면서 북한은 그 같은 기대를 접고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수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부시가 재선된 상황에서 미국과 협상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따라서 대선에 앞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 업적을 쌓으려는 부시측과 협상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계산 하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각각의 상황에 대비해 어떤 방책을 강구하고 있을까? 혹시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라는 '보험'에 드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대선자금 난타전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이 계 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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