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온 데다 일제에 의해 36년간 통치를 받아온 역사도 있어 대체로 외국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성향이 우리만의 단결력으로 표출되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전에서 뜨거운 열기로 뿜어져 나오는지도 모르겠다.이런 우리에게 최근에 은행산업을 중심으로 외국자본의 진출이 늘어나는 현상은 일종의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은 제일은행, 외환은행 등을 인수하면서 활발하게 국내 금융산업에 진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걱정과 우려의 핵심은 금융시스템 안정성의 저해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즉 철저하게 주주이익 중심으로 움직이는 외국계은행이 금융위기 상황이 닥치게 되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손절매를 해서라도 한국에서 빠져나가 금융시스템 위기를 증폭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한 신용도가 별로 높지 않은 국내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에 대한 금융서비스가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외국자본의 국내진출이 확대되면 서비스경쟁에 의한 양질의 금융서비스 제공, 선진금융기법 전수 등이 이루어지고 국제기준에 입각한 외국계은행의 관행이 반영되면서 각종 금융관련 법규, 제도, 감독기법 및 인프라 등이 선진화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이처럼 외국자본 국내진출 확대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가 혼재하는 가운데 글로벌시대에 외국자본의 국내 진출을 거부할 수 없는 추세라고 한다면, 결국 관건은 그에 따른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 진출하려는 외국자본에 대한 면밀한 적격성 심사를 통해, 선진금융기법을 가지고 우리 금융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영업을 수행하면서 우리 금융시스템과 생사고락을 같이 할 금융자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정부의 은행지분 매각 시 국내자본에게도 기회를 주어 우리나라 은행산업이 외국계와 국내계가 상호 견제를 통해 균형적으로 성장해 가는 구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다시 산업자본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악몽과 같았던 외환위기의 교훈을 망각한 주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은행의 중요한 역할은 기업구조조정이다. 은행은 기업에게 대출을 해주고 기업이 부실해질 경우 대출회수를 통해 부도를 유도함으로써 부실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소위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의 주체가 된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도 은행들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부실기업이 퇴출되지 않음으로써 부실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구조조정의 주체인 은행을 기업구조조정의 대상인 기업이 인수한다면 은행을 소유한 기업이나 그 계열기업이 부실해졌을 때 이들이 제대로 퇴출되면서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러기가 어려울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금융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시점에서는 정부의 은행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금융전업자본을 육성하는 것이 우리 경제와 금융의 백년대계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 방법은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사모펀드의 형태도 될 수 있고 연·기금의 활성화도 될 수 있을 것인데 그 구체적 방안에 대해 향후 더욱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이제 외국계은행의 국내진출 현상을 마치 국가대항 축구경기를 보듯이 우리편과 상대편으로 가르는 시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으로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 병 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