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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헌법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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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헌법 수난시대?

입력
2003.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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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법조인 대통령이 탄생해서 일까? 올해만큼 헌법이 정치적 논쟁에서 자주 들먹여진 해도 없다. 헌법국가의 핵심은 국가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개인의 기본권이 실현된다는 이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졌던 대부분의 헌법은 이러한 이념 자체를 제도화하지 못했고, 또 제도화되어 있는 경우에도 오랜 동안 '위기상황'이라는 논리로 존중되지도 않았다.민주화의 원년인 1987년 이후 헌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국가권력의 행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우리의 지난 헌법들과 비교하면 유례없이 장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대한민국은 헌법국가인가. 헌법은 불과 130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정도의 조문을 지킨다고 해서 헌법이 예정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은 환상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헌법은 사회를 장기적으로 지배하는 근본가치에 해당하는 엉성한 그물과 같은 규범이다. 그 엉성한 규범을 무시하면 헌법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 엉성한 규범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해서 헌법국가의 상태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엉성한 틈에 내포되어 있는 이념과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와 사회구성원의 의식과 문화, 그리고 행태가 동시에 존재하여야 한다.

형법과 민법 등 다른 법률에서는 국민이 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처벌을 받거나 혹은 의무를 이행한 것과 같은 상태를 실현한다. 국가는 이 모든 법의 집행력을 보장한다. 그러나 헌법적 기준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에게 부과되어 있다. 그런데 법을 지켜야 할 국가가 헌법을 위반하는 경우 누가 헌법의 집행력을 보장할 것인가.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의식과 문화, 행태와는 거리가 먼 국가현실에 대해서는 더욱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

조국의 근대화, 대망의 80년대, 구국의 결단 등의 수사를 쓰면서 헌법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그러한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헌법우호적 의식과 문화, 행태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먼 현실이라는 것이다.

책임총리제 및 분권형 대통령제 논의,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 재신임국민투표 제안,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 발동 논의, 그리고 특검법 제정과 재의결에 이르기까지 올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쟁점들은 모두 헌법적 관련성이 있고, 또 그 점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과연 이러한 헌법적 논의들이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쟁점화되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각자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하여 헌법이 장식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헌법상 허용된다"는 주장 하에 정치적 타당성이 없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또 헌법을 기준으로 위헌 여부에 따라 진영이 첨예하게 갈라졌다. 이로써 국민통합의 기본규범인 헌법이 오히려 극렬한 정치투쟁의 빌미가 되었다.

야당대표의 단식도 그렇다. 야당대표의 단식이 물론 헌법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야당의 대표가 단식의 방법을 통해서만 견제와 균형의 헌법적 이념과 가치를 실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였다고, 또 이로써 단식을 했던 전직 대통령들과 같은 정치적 위상을 차지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 헌법논쟁이 대부분 소모적이었듯이, 단식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국민불안을 야기하고,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는 국민을 볼모로 한 정치행태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래 저래 올 한해 헌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정면으로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며 한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전 광 석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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