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밤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 고인은 5선 의원에 세 정권에서 실세로 활약하는 화려한 정치인생을 살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허주'(虛舟·빈 배)라는 아호처럼 쓸쓸하고 허망했다. 경제사회적인 난국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흙탕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는 정치권에게 '킹 메이커' 허주의 타계는 이전투구와 권력투쟁의 허망함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될 만했다.그러나 조문을 온 쟁쟁한 정치인들은 허주의 영정 앞에서도 대선자금, 여권 분열 등 아름답지 못한 주제를 놓고 설전을 벌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초저녁에 빈소를 찾은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를 향해 "정치자금 소동이 다 이 사람 때문"이라며 김 대표의 정치자금 양심고백을 겨냥했다.
박 전 대표는 또 "당신은 시대를 거꾸로 읽고 있다. 왜 그런 이상한 것(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느냐"고 김 대표를 몰아세웠다. 김 대표도 지지 않고 "내가 오히려 시대를 제대로 읽고 있다"고 맞서면서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도 민망한 장면을 연출했다. 문 실장이 "대통령의 10분의1 발언 진의가 왜곡됐다"고 주장하자 최 대표는 "자꾸 말하면 오해가 더 쌓이는 것 아니냐"며 퉁명스럽게 맞받았다. 최 대표는 앞서 "차떼기 때문에 망했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여권과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정 안에서 특유의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 장면들을 보고 있던 허주가 마치 "이 사람들아,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없다. 제발 이제 그만 싸우고 정치 좀 잘해보라"고 훈계하는 듯했다.
범기영 정치부 기자 bum710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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