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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봉정암 법흥사·상원사 적멸보궁/저무는 한해 속세의 때를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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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봉정암 법흥사·상원사 적멸보궁/저무는 한해 속세의 때를 씻다

입력
2003.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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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자장율사는 정암사 외에도 네 곳에 적멸보궁을 더 세웠다. 정암사와 함께 '5대 적멸보궁'이라 불린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설악산 용아장성능의 봉정암, 강원 영월군 사자산의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의 적멸보궁이다. 1,3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5곳의 분위기가 각각 다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땅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곳, 길한 곳, 은밀한 곳이었을 것이다. 나머지 적멸보궁을 찾아간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실 당시의 깊이있는 풍광을 마음 속에 그려보면 떠나가는 이 한 해가 새털처럼 가벼울 터이다.영축산 통도사(선덕여왕 15년, 서기 646년)

'삼보(三寶)사찰'이라는 것이 있다.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 사찰이다. 불가의 으뜸 사찰들이다. 불보사찰은 적멸보궁이 있는 통도사, 법보사찰은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간직한 합천 해인사, 승보사찰은 수많은 대승을 길러낸 순천의 송광사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이다. 통도사 불이문(不二門)에는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籃)'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 땅 불교의 근본이 되는 절'이라는 뜻이다. 통도사가 들어있는 산 이름도 부처가 마지막 설법을 했던 영축산(영취산이라고도 함)을 그대로 빌려왔다.

통도사는 한반도에서 가장 접근이 쉬운 대찰이다.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에서 빠지면 바로 절 입구다. 길에서 가까운 만큼 규모도 크고 분위기도 세련됐다. 절 입구의 사하촌(寺下村)은 아예 관광단지가 되어 있고, 롤러코스터가 빙빙 돌아가는 테마파크(통도 판타지아)도 있다.

그러나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 세 개의 문을 차례로 통과하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좌우로 고풍스러운 절집들이 도열한다. 단청이 씻겨나간 나뭇결 그대로의 건물들은 바로 옛날 부처의 세계이다. 옷 매무새를 다시 여민다.

적멸보궁은 불이문에 들어선 이후 가장 끝에 있다. 지붕 밑에 사방으로 현판을 걸었는데 이름이 모두 다르다. 적멸보궁, 대웅전, 대방광전, 금강계단이다. 이 중 금강계단이란 글씨는 흥선 대원군이 썼다. 안에는 역시 부처님이 없다. 대신 수미단 뒤편으로 금강계단이 있다. 사리를 모신 곳이다. 승려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이 곳에서 승려의 계를 받는다. 불가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치러지는 곳이다.

설악산 봉정암(선덕여왕 12년, 643년)

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 중 하나가 소청봉 아래의 용아장성능이다. 이름 그대로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 봉정암은 그 이빨의 잇몸쯤 되는 위치에 들어있다. 해발 1,244m로 꽤 높다. 높을 뿐 아니라 가는 길도 무척 험하다.

봉정암 순례는 힘들다. 힘든 만큼 아름다운 순례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제 용대리에서 백담계곡으로 든다. 백담사를 거쳐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면 수렴동 계곡. 계곡의 끝자락부터 길은 하늘로 향한다. 지금은 붉은색 철다리와 계단이 계곡과 절벽에 놓여 있지만 옛날에는 첨벙거리며 계곡을 건너고 네 발로 절벽을 기어올랐을 것이다. 마지막 관문은 깔딱고개. 최근 험한 곳에 계단이 놓였지만 젊은 기운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봉정암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80%는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나 할머니다. 동네 시장에 가려고 해도 택시를 잡아야 할 나이에 험한 산길을 거의 날다시피 오른다. 아이의 대학합격을 위해, 집안의 평안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러 가는 길은 그렇게 기운이 펄펄 나는가 보다.

옛날 자장율사는 헬리콥터라는 것을 예측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봉정암은 석가사리탑과 본당, 요사채가 전부였다. 기도하는 신도가 많아지면서 대규모 불사를 했다. 자재는 모두 헬리콥터로 날랐다. 이제는 제법 큰 사찰이 됐다.

봉정암 참배의 정점은 석가사리탑이다.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이라고도 한다. 적멸보궁 뒤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있다. 평범한 5층 석탑이다. 그러나 아래로 펼쳐지는 설악 능선을 배경으로 한 석탑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1,300년 동안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다람쥐 채바퀴 같은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어찌 번뇌가 있겠는가.

사자산 법흥사(선덕여왕 12년, 643년)

강원 영월 땅에는 특이한 지명이 있다. 주천(酒泉)면이다. 이름 그대로 술샘이다. 술이 솟았다고 한다. 양반이 술잔을 놓으면 청주(맑은 술)를, 평민이 잔을 대면 탁주를 냈다. 은근히 부아가 난 평민이 양반 의 옷을 입고 술잔을 놓았다. 술샘은 속지 않고 탁주를 넘치게 부었다. 화가 난 평민은 술샘을 아예 부숴버렸다. 이제 술은 솟지 않지만 샘의 흔적은 있다.

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물. 인근에 수주(水周)면이 있다. 물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이다. 정말 마을을 뺑뺑 돌아 물이 흐른다. 법흥사는 수주면의 끄트머리에 있다. 물 기운과 산 기운이 만나는 곳이다. 산의 이름은 사자산이다. 자장율사는 산 어딘가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다. 그래서 산 전체가 부처의 나라이다.

법흥사(옛 이름 흥녕사)는 한때 융성했다. 산의 이름을 딴 사자산문이 활기를 띠었고 그 중심 도량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초를 많이 겪었다. 891년 불에 탔다가 944년 중건됐다. 이후 다시 불에 타 1,000년 가까이 명맥만 유지하다가 1902년 비구니인 대원각이 중건해 법흥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러다가 1912년 다시 불에 탔고 1930년에 중건됐다가 1931년에는 산사태로 일부가 유실됐다. 지금 새 청사진을 갖고 큰 불사를 벌이고 있다.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절터의 제일 높은 곳에 있다. 여러 번 고초를 겪은 만큼 새 단장을 한 적멸보궁이다. 5대 적멸보궁 중 가장 깔끔하고 단청도 새롭다. 운치는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옛 기세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이 많다. 절 입구에 있는 징효대사탑비는 보물 612호로 지정된 귀중한 유물이다. 탑비에서 바라보는 극락전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오대산 상원사

오대산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다섯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오대산이다. 그리고 자장율사가 중국(당·唐)에서 수도를 한 산이 오대산이다. 지형으로 봐서는 전자가, 자장율사가 적멸보궁을 세운 곳이라는 점에서는 후자가 맞을 듯하다.

풍수학적으로 오대산 적멸보궁은 땅의 힘이 대단하다고 평가 받는다. 그 자리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승려들이 먹을 것 걱정 없이 수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오대산 적멸보궁 가는 길은 즐겁다. 볼 것이 워낙 많다. 처음 만나는 것은 월정사. 큰 절이다. 조계종의 강원도 대부분 사찰을 호령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다. 전나무숲은 너무 유명하다. 숲 사이에 좌정하고 있는 월정사 부도군, 우리 사찰에서 만나기에는 다소 화려한 8각9층탑, 적광전 뒤의 야산에 펼쳐진 잣나무숲 등은 산사 여행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원사. 상원사는 월정사와 적멸보궁의 중간에 낀 사찰이었다. 월정사의 스님들이 수도를 하는 곳이자 적멸보궁을 보필하는 선원이었다. 조선 세조가 이 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고, 이후 조선 왕조의 아낌을 받았다.

적멸보궁은 상원사에서 산길로 약 40분(1.5㎞) 거리에 있다. 지그재그로 난 계단과 돌길을 걸어야 하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 가벼운 겨울 산행으로 제격이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들렀다면 꼭 찾아야 할 곳이다. 산에서 느끼는 비속(非俗)의 느낌. 가슴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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