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생포는 이라크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우선 이라크 국내적으로 치안이 회복될 공산이 있다. 무엇보다 '사담이 분명히 돌아온다'며 미군에 저항 의지를 불태우면서 테러 세력을 부추기던 수니파 이라크인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 8개월 간 불안했던 치안이 다소라도 안정을 되찾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치안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테러가 줄어들면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후세인 생포는 또한, 연합군의 사기를 높이고 미국에 냉담하던 유럽 국가들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는 외교적 화해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생포 소식이 전해진 직후 독일 슈뢰더 총리는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도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발표했다.
상황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진전될 경우,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가 석유를 국제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됨으로써 세계 경제 회복에도 상당한 활력소가 될 수 있다. 15일 세계적으로 증시가 크게 오른 것도 그런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상황을 부정적으로 치닫게 할 변수도 많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후세인의 생포 사실이 발표된 이후에도 바그다드에서 자살테러와 공격이 연달아 발생해 최소 8명이 숨졌다.
저항이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지금까지 연합군을 겨냥한 공격은 바트당의 잔당과 지방 세력의 지도자들이 기회를 틈타 벌인 것이며 후세인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둘째는, 그동안 저항세력을 주도한 집단이 알 카에다와 연계된 과격 이슬람 저항 단체들과 아랍민족주의자들이었을 가능성이다. 후세인 생포 이후 이들을 포함해 더 많은 수니파 세력들이 후세인 생포에 대한 분노감과 복수심에 불타 무장투쟁에 동조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군 점령과 주권 이양과정에서 불만이 고조될 경우 투쟁적인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좌절감에 대한 보복심리로 자제심을 잃고 공격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 후세인이 생포됨으로써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이라크인들의 요구가 오히려 거세질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테러를 줄이려면 이라크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아랍인들은 명예가 손상되면 이미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라크인의 믿음과 성소를 비웃듯 하는 행위를 하여 명예를 깎아 내리면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반드시 보복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자살 테러가 가능한 것이다. 살아도 명예를 손상당한 자는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은 언제라도 자살 테러를 감행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전통은 내·외국인 모두에게 차별없이 적용된다.
무엇보다 미군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이라크 지배를 과도통치위원회에 이양해야 한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시아파 13명, 수니파 5명, 쿠르드족 5명, 투르크족 1명, 기독교도 1명 등 총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후세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제거하려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나 이제 공동의 적이 사라진 만큼 권력 장악을 위해 서로의 갈등을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에 역점을 두어왔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에 더해 이라크 내 이해세력과의 외교 전쟁까지 부가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음을 미국은 유념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민주적인 정치경험이 없는 이라크에서 타협과 절충을 중시하는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지나친 낙관론이다.
김 대 성 한국외국어대 교수·중동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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