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 땅의 사찰은 모두 공사중'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절이나 중창 불사를 일으켜 새 집을 짓고 규모를 넓히고 있다는 거죠. 적멸보궁을 취재하면서 이 말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 옛말은 정말 옛말입니다. 우리 강산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변하고 있습니다. 관광지는 더욱 빠르게, 그리고 절집은 더더욱 빠르게 모습이 바뀝니다.새천년을 맞는 1999년 12월에 5대 적멸보궁을 모두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4년 만입니다. 옛 기억을 몽땅 지우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과 풍광을 새로 머리 속에 입력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적멸보궁 자체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주변은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통도사는 절 바깥이 많이 변했습니다. 절 입구의 관광단지가 넓어져 '구단지'와 '신단지'로 구분해야 할 정도입니다. 절이 들어있는 영축산의 옆구리에 새 관광단지를 만들려는지 능선을 허옇게 뒤집어 놓았습니다.
4년 전 법흥사는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아담한 절이었습니다. 초라할 정도였죠. 이제는 승용차 100대 이상을 세울 수 있는 축구장만한 주차장에 위풍 당당한 일주문을 갖췄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설악산 정상 가까이 있는 봉정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작은 암자가 아닙니다. 참배객이 묵는 대형 숙소까지 지었습니다. 헬기를 동원해 모든 자재를 날랐다고 합니다.
오대산 상원사도 그렇습니다. 상원사와 적멸보궁 사이에 중대선원이라는 스님들의 공부방이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선원의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있었습니다. 대형 헬기로 대형 포크레인을 실어 나르고 숲을 뚫어 자재 운반을 위한 모노레일까지 설치했습니다. 이제 거대한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이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공사장의 주변 정리가 신통치 않습니다. 산 속에서 폐기물장을 만난 느낌입니다.
신도와 스님이 늘면 절을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걱정은 새 것에 치여 옛 것이 사라져 간다는 것 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찰로서의 무게와 사찰로서의 위엄입니다. 잃는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절을 넓이는 것은 부처의 뜻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욕심일까요. 대답은 명확합니다.
세속을 벗어나려 찾아간 산사에서 인간의 욕심만 생각하다가 절 문을 나섰습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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