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간 이어져 온 '문학의 위기, 혹은 죽음에의 위협'에 대한 한국 문학의 탐구와 모색은 현재 진행형이다. 판타지·인터넷 소설 등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최근 몇 해, 본격 문학은 심각하게 나아갈 길을 찾고 있다. 초판도 소화하기 어려운 현실에 고민하면서도 작가들은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시와 소설의 할 일이 아니냐는 물음으로 문학의 임무를 성찰했다.올해 한국 문단은 '중심의 위력'을 알렸다. 중견 작가들이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지면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묵직한 신작과 조용한 위력, 활발한 대외활동이 뉴스가 됐다. 회갑을 맞은 황석영씨의 한해 추수는 풍성했다.
여름에 출간된 '황석영 삼국지'(전10권)가 60만 부나 팔렸다. 지난해 10월부터 1년 간 한국일보에 연재한 '심청, 연꽃의 길'을 단행본 '심청'(전2권)으로 묶어냈고, 대표작인 역사소설 '장길산'을 어린이물로 다듬은 '어린이 장길산'(전10권)의 출간도 앞두고 있다.
권수로 스물 두 권인 저작물 위에 국내외 필자 14명이 참여한 평론집 '황석영 문학의 세계'가 얹혀졌다. 1988년에 출간된 장편 '무기의 그늘'도 작가를 바쁘게 했다.
베트남전 참전 체험을 다룬 이 소설의 프랑스어판(줄마출판사 발행)이 출간됐다. 줄마출판사는 장편 '손님'과 '심청' 프랑스어판 번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가을 '황석영 주간'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청준씨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이 100쇄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올해 초 차분하게 전해졌다. 곧 이어 전25권의 '이청준 문학전집'이 5년 만에 완간됐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단단한 신작 '신화를 삼킨 섬'(전2권)을 출간했으며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와 동화 '숭어도둑'을 펴내는 등 바쁜 한 해를 보냈다.
5월에 열린 '이청준 문학의 넓이와 깊이' 심포지엄에서 비평가들은 "이청준 문학은 긍정과 부정 간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현실에 저항하고 모순의 긴장을 견지하는 힘을 갖는다"고 평했다.
이성복씨도 5년 만에 다섯번째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을 냈다.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등 그의 절창에 가슴앓이를 했던 독자들에게는 설레는 소식이었다. 더욱 반갑게도 그는 곧 이어 메타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을 냈다.
귀한 문인들의 부음도 잇따랐다. 2월 소설가 이문구가 위암으로 타계했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풍부하게 다듬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믿고, 소설 속의 풍요로운 토속어로 그 믿음을 실천했던 그의 부음에 문단은 애통해 했다.
우리말을 살리는 데 힘썼던 또 한 사람, 아동문학가 이오덕도 8월 타계했다.
생전에 아이들이 생각과 느낌을 정직하게 쓰기를, 소중한 우리말을 바로 쓰기를 바랐던 문인이었다.
조병화 임영조 김강태 등 시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이어 들렸다.
'낮에 나온 반달' '산바람 강바람' 등 우리 어린이들을 키운 노랫말을 지은 아동문학가 윤석중도 지난주 세상을 떴다.
'중심의 힘'에 대해 젊은 작가들은 발랄한 상상력으로 이름을 알렸다. 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배수아씨의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김영하씨의 장편 '검은 꽃' 김연수씨의 중편 '사랑이라니, 선영아', 이만교씨의 소설집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등이 눈길을 끌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정이현씨,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씨 등 신인들의 작품도 올해 눈여겨 볼 만한 수확이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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