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과 김선아는 코미디 영화 번성이 키워낸 소중한 수확이다. 순진하면서도 엉뚱한 소년 이미지의 차태현, 적재적소에 터뜨리는 표정 하나로 웃음을 만들어 내는 김선아. 두 배우가 주연하고, 미혼 남녀를 가장 설레게 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는 데다 제목마저 코믹한 '해피에로 크리스마스'라면 우선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유성 온천에 살고 있는 소년 병기. 닭을 던지면 백숙이 되어 나온다는 뜨거운 물에 자신을 처박은 깡패 석두 같은 녀석을 잡아 넣고 싶은 생각에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다. 꿈은 반만 이뤄졌다. 파출소 순경이 된 성병기(차태현). 하지만 포순이 복장을 하고 깡패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형편없는 순경이다.
생일인 크리스마스만 되면 실연을 당하는 볼링장 직원 허민경(김선아). 또 다시 징크스가 현실이 되고, 홧김에 뱉은 침을 석두(박영규)가 맞으면서 사고가 터진다. "그건 운명"이라며 석두는 민경에게 구애하고, 민경을 짝사랑하는 병기는 석두를 잡아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늘 헛발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싱싱한 횟감을 재료로 들여다가 허술한 경양식 생선까스를 만들어 내놓은 느낌이다. 산만한 시나리오나 연출은 두 배우의 잠재력을 제대로 살려 주지 못했다. 김선아의 자연스러운 애드립 연기도, 차태현의 과장되고도 귀여운 코믹 연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급조된 듯한 기획과 연출력의 단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변강쇠 산타의 이야기를 찍는 에로 비디오 감독의 에피소드, 성적 환상에 가득찬 고교생의 연애담, 심지어 병기가 석두를 무참히 깨버리는 꿈 속 장면조차 억지로 웃으려 노력하지 않는 한 쉽사리 웃기 어렵다.
허를 찌르는 웃음에 대한 기대를 버리더라도 '온천 아가씨' 선발대회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늘아가씨 선발대회 장면에 비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트럼펫 부는 밴드부 소녀에게 엉뚱한 성적 환상을 품는 소년의 욕망을 그려내는 방식은 '몽정기'보다 나태하다. '러브레터'를 보고 감상에 빠지고, 한글로 적은 영어 가사를 외워 캐럴을 부르는 '럭셔리'를 지향하는 깡패 석두가 허리에 재떨이를 차고 공공질서를 강조한다든가, 민경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갑자기 '엄마가 섬그늘에∼'를 소리 높여 부르는 장면 정도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차태현―김선아의 앙상블 코미디였음을 영화는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감독이 지향하는 바가 '소박한 웃음'이라는 것은 화려한 두 배우를 초라한 일상의 인물로 그려낸 것이나 여러 조연(백화점 주차 안내원, 파출소 순경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는 점을 보면 공감이 되지만, 그건 '쓰키다시'일 뿐 메인 요리가 될 수는 없다.
당연히 두 배우에게는 '교훈'을 주는 영화가 될 듯하다. 최근 잇달아 코미디 영화에 출연해온 두 사람은 이름이 갖는 후광만으로는 만족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법하다. 이건동 감독의 데뷔작. 17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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