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이 DVD를 만든다고?" 왠지 신중현과 DVD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미인' '아름다운 강산' 등 그의 히트곡은 레코드판(LP)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아날로그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한국 록의 대부'로 일컫는 신중현이 그의 음악 인생을 총정리하는 DVD를 내놓는다. 그것도 혼자서 모든 작업을 직접 한다. 현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므로 빠르면 내년 1월말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갑자기 왜 DVD를 만드는 걸까?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 '우드스탁'을 찾았다. 지하 1층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각종 악기와 녹음 장비 사이로 머리에 하얗게 세월이 내려 앉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주 작은 노인이 나타났다. 신중현이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다섯, 내일모레면 칠순이다.―DVD를 만드신다면서요?
"아, 그거요.(쑥스러운 듯 웃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훑는다. 한 손으로 훑어도 충분할 만큼 얼굴이 작다. 손이 큰 것인가?) 제 음악은 상업성과 거리가 멀다보니 TV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기 힘들더라구요. 쇼 음악과는 다른 진정한 제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내용이 들어가나요?
"'미인' '아름다운 강산' 같은 알려진 곡들은 물론이고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곡들도 이번에 처음으로 DVD에 수록할 거에요. 90년대 TV에 잠깐씩 나갔던 영상과 90년 '너희가 록을 아느냐' 콘서트와 2000년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던 콘서트 필름을 집어 넣어야지요. 또 제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새로 찍은 영상들과 '커피 한 잔' '빗 속의 여인' 같은 다른 가수들이 부른 제 곡도 사진과 함께 수록할 겁니다."
―그럼 예전 전성기인 70년대 흑백 TV시절 영상도 볼 수 있나요?
"하.(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게 없어요. 제가 75년에 활동 금지 당하면서(그는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징역 4개월형을 받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100여 곡이 금지당했다. 금지곡은 87년이 돼서야 풀렸다) 방송국에서 녹화 영상을 모두 폐기해 버렸대요. 지금 하나도 없어요."
"스테레오의 시대는 끝났다" 멀티 사운드로 듣는 신중현의 음악
―언제부터 만드신거죠?
"지난해 12월부터니까 꼬박 1년 됐네요. 혼자서 하다보니 오래 걸렸어요. 원래는 이달 말쯤 나오는 건데, 미국에 새로 주문한 최신 영상 장비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시간이 좀 걸리네요."(그는 혼자서 영상 촬영 및 편집, 음악 편곡 및 녹음 등 DVD제작에 필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 거기에 요즘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 영화 음악을 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부족하네요."
―기존 음악 DVD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현재 나와 있는 국내 가수들의 콘서트 DVD를 많이 봤는데 사운드가 제대로 녹음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댄스 음악 등 일반 대중음악은 멀티(5.1채널) 효과가 잘 안나거든요. 멀티 사운드의 시작은 60년대 지미 헨드릭스의 사이키델릭 록이에요. 그런 점에서 사이키델릭 록에 뿌리를 둔 제 음악은 멀티 사운드를 구현하기가 쉽죠. 기존 음악DVD와는 다른 제대로 된 DTS 5.1채널의 음악을 들려줄 겁니다."
―요즘 음반 시장이 어렵다던데, 음악 DVD는 잘 될까요?
"2채널(스테레오) 음악의 시대는 끝났어요. 음반이 안 팔리는 이유는 더 이상 사람들이 스테레오 음악에 매력을 못느끼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멀티(5.1채널)의 시대에요. 음악성이 가미된 멀티 음악만이 새로운 음반 시대를 열겁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어렵다고 말하는 신중현의 음악이 무엇인지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사실 말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 아니죠. 장르를 정의하기도 힘든 게, 장르는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는 건데, 제 음악은 장르를 벗어났거든요. 그저 보여주고 들려줄 수 밖에 없어요."
알쏭달쏭한 대답을 듣고 일어섰다. 그때였다, 그의 휴대폰이 울린 것은. '띠리리링 띵띠리리리리 띠리링 띠링 띠링' 휴대폰 벨소리가 '미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힘을 지닌 멜로디, 그것이 바로 신중현의 음악이 아닐까.
/글·사진=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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