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고향 농가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붙잡힌 후세인은 헝클어진 머리털과 목을 덮은 회색 수염으로 문득 솔제니친이나 이란 종교지도자를 연상케 했다. 군중 앞에서 한 손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며 잔인한 미소를 머금던 한 시대의 절대 권력자는 초라한 모습의 포로가 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체포에 대한 논평에서 "이라크 역사에서 암흑과 고통이 끝났다"고 말했다. 전후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세에 골머리를 앓던 그에게는 후세인의 생포가 일단 너무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앞세웠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의 은닉이었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속내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있었다. 즉 이라크나 북한 같은 불량국가가 말썽을 피우지 못하게 하려면 그 나라를 지배하는 정권을 바꾸고 나라를 개조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시정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용어로 레짐체인지(regime change)와 내이션빌딩(nation building)이 미국 신보수주의자의 불량국가 대응정책의 기조이다. 이라크 침공과 후세인 체포를 통해 부시정부는 불량국가 대응모델을 실행한 셈이다.
■ 그러면 후세인 체포로 미국의 이라크 정책은 전망이 밝아진 것일까. 파병을 망설이던 동맹국들의 태도가 일시에 달라지고 있다. 후세인의 롤백을 염두에 둔 이라크 국민의 심리상태도 달라질 것이다. 일시적 효과는 클 것임에도 이라크 재건을 포함하여 미국의 대 테러전략은 만만찮은 복병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미국이 벌이는 비대칭형 전쟁은 과거 국가 대 국가가 승패를 겨루는 전쟁과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물론, 세계도처에 퍼져있는 반미 테러세력들이 어떤 형태의 공세를 취할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 전범재판에 회부될 후세인에 대한 아랍인들의 동정론도 불안의 씨앗이 될 수 있다.
■ 이라크 사태는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에 더욱 어렵게 꼬일 수도 있다.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부시정부와 유럽동맹국은 엄청난 간격이 벌어졌고, 전후 재건과 정부의 민간이양 계획을 놓고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모양상 이라크 전후처리는 유엔의 역할로 바람직하다. 미국은 유연한 자세로 동맹국과 국제기구를 활용한 다자적 해결을 모색해 봄 직도 하다. 그러나 유엔의 역할에 대한 부시정부의 불신이 크고 한번 맛본 일방주의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운 모양이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불신을 자초하는 미국의 우행이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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