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검찰청에서는 '수사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UN) 총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가치를 지닌다'는 인류 보편의 진리를 세계인권선언으로 채택한 지 55돌을 기념하는 행사였다.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마라톤 토론회의 주제는 수사 과정에서 여성·아동·장애인·외국인 등 소위 약소계층의 보호를 더욱 강화하고, 언론 보도로 인한 인권침해를 줄여 보자는 두 가지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 피해자지원센터 등 인권 현장을 지켜 온 시민단체의 생생한 체험담이 여과 없이 발표되었고, 중견 검찰 출입기자는 수사 상황을 취재·보도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애로사항을 털어 놓았다. 검찰·교정·출입국 행정 담당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권 현실과 문제점도 생생하게 소개되었다.
토론회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전향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첫째, 수사기관과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인권보호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하여 함께 고민해 보았다는 점이다. 수사란 간단히 말해서 범죄를 밝히고 범인을 잡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압수·수색이나 감청, 참고인의 조사 등이 필요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체포·구속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수사는 본질적으로 인권 침해적 속성이 내포되어 있는 절차이다. 검사나 사법경찰관의 입장에서는 범인을 잡고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만 정의가 구현되고,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나 그 가족의 인권이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칫 의욕이 앞서다 보면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반면 인권단체에서는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활동을 가능하면 제약·통제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연히 비우호적이기 마련인 양측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또 하나는 소수자,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아동, 외국인, 장애인 등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언론문제와 관련해서 보면 피의자나 피고인은 물론 참고인들까지도 잘못된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할 우려가 있는 약자라 할 수 있다. 토론의 논점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 대한 보호를 한층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사회적 정의나 국민의 알 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약자들의 인권이 무시되거나 소홀하게 취급된다면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뜻 깊은 인권주간(12월7∼13일)을 보내면서 강자나 다수의 인권에 못지않게 약자와 소수의 인권이 보장되고, 피의자나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나 사건에 관련되어 무고하게 조사를 받는 참고인들의 인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최 재 경 법무부 검찰 제2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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