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에게까지 다가오는 '대선자금 회오리'를 피하기 위해 마침내 대통령직 사퇴를 거론했다. 14일 4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내가 쓴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으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도술씨 비리사건 때 내놓았던 재신임 제안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그 때는 대통령직 유지 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만 했으나, 최근 불법 대선자금에 안희정씨 등이 개입한 흔적이 드러나자 그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꺼내든 마지막 카드에 대해 당연히 "자신의 불법행위를 호도하기 위한 수(手)가 아니냐"는 지적이 야당에서 제기되고 있다.자연히 이 카드는 방어적이라기 보다는 공세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대통령직 사퇴 여부를 '10분의1'이라는 수치에 걸어놓은 것 자체가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한나라당의 10분의1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대선자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데에도 이 같은 상대적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역으로 '10분의1이 안될 경우 대통령직을 사퇴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식의, 자기면죄부적 성격이 내포돼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이날 "부끄럽다"며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왜 하필이면 10분의1이냐'는 데 대해선 명확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국민에게 '그 정도면 용인돼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일방적으로 던진 셈이다. 윤태영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직접 자신도 모르는 것이 불거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을 보면 사전에 전모를 파악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대한 확인이 끝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재신임 제안을 살려두는 의도도 명료하지 않다. 다만 '사퇴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한나라당의 10분의1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자신하는 불법 대선자금과 측근비리에 대한 정치적 마무리로서의 재신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 핵심 관계자가 '대통령직을 수치에 연계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의문에 대해 "10분의1은 산술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며 한발 물러선 것도 이런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