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식물이나, 살아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침을 열면서 지금 일어날까, 아니면 5분 더 잘까를 비롯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까를 늘 고민하게 됩니다. 현재의 즐거움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지금 어려움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하는 것이죠. 이라크에 우리 군인을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의 문제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에 완벽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항상 하나를 고르기 어렵고, 그 선택에 후회도 많습니다.이러한 식물도 선택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식물은 동물보다 몇배 많은 DNA를 가지며 많이 고민하고 현명하게 살아간다고 늘 말씀드렸지만 왜 식물의 선택인들 후회가 없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이 땅에서 사라지는 상당수의 희귀식물도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전략을 세운 결과일 수도 있겠지요.
반대로 귀화식물처럼 자신의 강점을 이용해 번성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 시각에서 보면 누구도 이들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들이 사라지도록 방치하는 지금의 사람들은 더 크게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겠구요. 겨울이 깊어가니 낙엽도 모두 지고 언제나 늘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수의 잎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상록수들은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주목 같은 것이다보니 잎이 뾰족한 침엽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상록수는 모두 침엽수려니 생각하지만 조금만 따뜻한 곳에 내려가도 상황은 달라집니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가시나무부터 중부지방에도 살고 있는 사철나무 같이 상록수이면서 넓은 잎을 가진 것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나라 남쪽의 난대림은 이러한 상록활엽수림이 주인인 숲이 됩니다.
나무가 상록수냐 낙엽수냐도 선택의 문제이지요. 계절 구분이 없는 열대지방 식물과 달리 우리의 나무는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고, 그러려면 그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낙엽수야 문제의 소지가 될 여린 조직들은 모두 떨구어 버리고 새 봄을 기다리면 됩니다. 반면 상록수는 춥고 건조한 조건에 적응하자니 수분의 손실을 막을 수 있도록 잎의 표면적을 최대로 줄여 가늘게 하고 두꺼운 큐티클 층에 싸인 깊은 곳에 숨구멍을 묻어두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의 나무들은 추위가 좀 견딜만한 까닭에 잎의 표면적은 줄이지 않은 채, 큐티클 층을 발달시켜 잎을 두껍고 뻣뻣하게 하고, 그 표면에 왁스층을 두껍게 하여 겉보기에 반질반질하게 느껴지지요. 태양광선을 잘 활용하는 역할까지 감안한 장치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선택이라 생각되는데 이럴 수 있는 것도 겨울 추위가 남쪽에서는 웬만하니 가능한 것이지요. 우리들의 선택도 비빌 언덕을 생각하며 결정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해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잘한 선택과 잘못한 선택이 많겠지만, 마무리 만큼은 찬찬이, 그리고 깊이 생각해 가장 후회가 적도록 해야겠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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