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 있는 젊은 의사를 찾습니다."20여년째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은명내과를 운영하며 어렵고 병든 이웃에게 인술을 펼치고 있는 '상계동 슈바이처'김경희(84·사진) 원장이 후계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
1943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김 원장은 일본 유학을 마친 뒤 대학시절 틈틈이 해오던 무료 의료봉사 활동을 아예 본업으로 삼아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몸소 실천해왔다. 70년대 김 원장은 왕진 가방을 들고 신림동과 청계천, 답십리, 망원동 등지에서 판잣집이 늘어선 골목골목을 누비며 환자를 찾아 다녔고, 84년 당시 서울에서 빈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던 상계동에 둥지를 틀었다.
김 원장은 당시 보험혜택이 없던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주사 투약은 물론, 간단한 임상 검사부터 심전도 검사에 이르기 까지 모두 진료를 1,000원으로 해결해 주는 '천원진료'를 시작했다. 심장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무료 심장수술을 주선하고, 중고생을 위한 '은명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2,000여명의 지역 중고생이 장학금 혜택을 누리게 했다. 서울시와 한국일보가 제정한 서울시민대상을 91년 받았다.
84세의 고령에도 불구, 아직도 직접 청진기를 꽂고 환자들을 보러 다니는 김 원장은 2000년 5월 이 지역의 가난한 이웃 100가구를 선정, '은명마을'을 만들어 의료 뿐만 아니라 살림살이나 경조사 등을 챙겨주고 있다. 그러나 김 원장에게도 최근 고민이 생겼다. 자신의 뒤를 이어 불우한 이웃들을 돌봐줄 의사가 없는 것이다. 연초에는 현기증에 시달렸는데 최근에는 무릎 관절염까지 앓고 있어 환자들을 찾아 다니며 오래 걷는 것도 무리다. 김 원장은 "60여년간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자부심과 사명감 하나로 살아왔다"며 "후계자를 찾고 있지만 요새 그런 젊은이가 어디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