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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정치가 뭐기에, 돈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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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정치가 뭐기에, 돈이 뭐기에

입력
2003.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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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22일 저녁. 평범한 2.5톤 탑차 한 대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 차의 앞 좌석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를 나와 노력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을 수호하는 판사생활을 오랫동안 한 50대 후반의 변호사가 타고 있었다. 트럭의 탑재칸에는 기업에게서 트럭째로 넘겨받은 현금 150억원을 담은 상자 63개가 실려 있었다.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에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제3의 장소로 이동하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 사회에서 누구와 비교해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

개혁이라는 용어가 정치담론의 주제어로 등장한 것은 지난 김영삼 정부 때다. 그 후 10년이 넘었지만 정치가 개혁되었다고 느끼는 국민은 없다. 국민의 불신을 받는 정치인들이 모여 국민들에게 절망만 주는 정치를 한다면 국가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자금 문제는 정치개혁의 걸림돌이자 가장 높은 진입장벽이다. 양심적이고 전문성을 지닌 정치신인들이 정치를 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들고 있다. 정치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조달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를 할 수 없다. 현역 의원은 신인에 비해 정치자금 조달의 노하우를 더 잘 알고 자금조달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니 신인의 정치권 진입은 출발선상에서부터 훨씬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정치권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이지만 정치를 하며 돈을 못쓰게 규제할 수는 없고 정치자금 문제는 투명성의 확보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 투명성은 투입(input)과 산출(output) 모두를 포함한다. 즉 정치자금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조달했는가와 함께 제대로 쓰여졌는가 하는 사용처도 매우 투명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자금조달의 합법·불법성에 중점을 두어 논의가 이루어져 왔는데 만약 돈의 조달에만 엄격하다면 자기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돈많은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두번째 문제는 정치관련법 위반자에 대해 너무 허술한 처벌이다. 지난 10년간 많은 정치인들이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가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다. 어떤 이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 당했지만 몇 년 후 오히려 광역자치단체장의 후보로 나와 당선된다.

이는 우리 유권자들의 망각에도 기인하지만 법을 위반한 정치인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일반인이나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에 비해 훨씬 높아야 한다. 위법자들은 정치로부터 도태되어야 할 정도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불법적인 행태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치관계 사범들만을 철저히 수사하는 독립된 수사기관의 설치가 필요하다. 지금 같은 대검 중수부 위주의 수사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 수사결과에 대한 신뢰의 결여는 새로운 정쟁의 불씨를 제공하는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정치엔 돈이 든다. 이는 명제에 가깝다. 정치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런데 돈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내 돈'과 '남의 돈'이다. 내 돈만 가지고 정치를 하라면 돈있는 사람들만의 금권정치가 될 것이다. 남의 돈은 기업의 돈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권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재 창출을 기대하는 국민의 세금이 정치 재원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치자금에 대한 조달 및 사용처에 대한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어기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특단의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 도 종 명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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