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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더 무서운 건강보험"/"암환자에 도움안돼 편법 난무" 전문의들 부당한 보험기준 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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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더 무서운 건강보험"/"암환자에 도움안돼 편법 난무" 전문의들 부당한 보험기준 성토

입력
2003.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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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기 유방암 환자는 약값으로 수천만원이 들었어도 1년 이상 더 산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한창 아이들 클 나이에, 1년의 인생을 수천만원에 산 거죠. 하지만 어떤 환자는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고 해요. 2,000만원쯤 썼는데 그것도 부담이 크답니다. 약이 잘 듣고 있었는데, 돈이 없어 그만 죽겠다니 참…. 약 승인이 난 지 1년 반이 지난 최근에야 보험기준이 정해졌으니 그 사이 이런 환자들이 속출한 거죠.""글리벡 치료에 실패한 백혈병 환자들은 골수이식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나마 생존율이 20%밖에 안 되죠. 그런데 생존율이 낮다는 이유로 보험에서 제외됩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혜택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환자들 몇 명 안 됩니다. 대신 감기 환자들한테 1,000원씩만 더 받으면 되잖습니까."

"환자가 들어오면 돈이 있나 없나 이것부터 살핍니다. 정말 어려운 환자가 하나 있어서 살짝 입원을 시켜 본인부담을 낮춰(외래환자는 50%, 입원환자는 20%) 약을 주고 내보냅니다. 알려지면 누구나 입원시켜 달라고 할테니 그것도 몰래 하죠."

"재정이 열악한 건 이해해도 비상식적인 규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골수이식 후 거대 바이러스 감염 예방약은 무조건 처방하지 않으면 보험이 안 됩니다. 감염이 우려될 때 처방하면 더 절약할 수 있는데요. 최근엔 저용량 항암치료가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많은데 보험기준보다 용량을 낮춰 처방하면 역시 보험이 안 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십니까. 무조건 처방전은 써놓고 실제 약은 아껴두는 겁니다. 편법에 도통했지만, 잘못한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최신 연구를 들이밀며 기준을 바꿔달라 해도 답은 뻔합니다. '타당성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죠. 관료들이 이렇게 경직돼 있는 동안 돈 없는 환자들이 얼마나 죽어나갈지 생각해 봤을까요…?"

"의대 교수들, 학생 왜 가르칩니까? 어떤 약을 쓸지는 보험에 달려있으니 차라리 보험공단이 강의하라고 하세요. 우리 차라리 스트라이크 합시다!"

미국 샌 안토니오 유방암학회와 미국혈액학회에서 만난 의사들은 암 전문의들이다. 그들은 최신 치료법과 신약 정보에 들뜨다가 곧 "보험도 안 되는데 저 비싼 걸 어떻게…"라며 주저앉았다. 보험 얘기만 나오면 목청을 높였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암 환자들, 하루 이틀의 생명 연장이 문제가 되는 말기 환자에게 '제한된 보험재정'이란 야속함을 넘어 분통이 터지는 지경이었다.

"처음에 보험기준을 잘못 잡은 의사들 잘못"이라거나 "제약사들이 좀더 약값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보험당국을 이해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지난해 감기(1조8,300억원)에 지출된 건강보험 재정은 암(약 7,000억원)의 2배를 넘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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