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지하철 시청역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3,752만원이라는 거액을 넣은 사람이 있었다. 옷차림이 허름했다는 50대 남자는 "다시 생각해 보라"는 구세군봉사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돈을 넣고 갔다고 한다. 1928년 구세군이 모금을 시작한 이래 단일 건으로 최대 액수인데, 보도를 보고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 돈이 부정한 돈이라는 뜻이 아니라 거액 기부의 동기가 일종의 화풀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조폭처럼 차떼기로 돈을 뜯고 거침없이 몇 억원씩 삼키는 더럽고 썩은 세상에 항의를 한 것처럼 보였다.■ 올해에도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들리고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이 행해지고 있다. 기부동기가 무엇이든 이웃을 도우려고 돈을 내는 사람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작년처럼 1,000억원 이상 걷힐 것으로 기대된다. 연중 기부자가 늘어 연말연시 성금의 비중이 70% 이상에서 65%대로 낮아진 것도 좋은 일이다. 요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몸을 던져 남을 구한 철도원이나 지하철의인과 함께 기부를 통해 남을 돕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복권에 당첨되면 으레 기부를 하는 풍조도 정착돼 가고 있다.
■ 그러나 아직 멀었다. 아름다운재단의 2000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1인당 기부액은 129만원이다. 전 가구의 86%가 기부를 한 경험이 있고 전체 기부금의 80% 이상이 개인기부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1999년부터 올해까지 229억달러를 내놓았다. 일본은 28만8,000원, 영국 18만7,200원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 재단의 1,000여명 면접조사에 따르면 2001년의 1인당 기부액은 5만1,775원이었다. 몇달 전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의 기부액은 평균 200억원이었으나 매출액의 0.15%에 불과했다.
■ 기부가 일상생활이 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많다. 기부금품모집 규제법부터가 문제다. 명칭 자체에 기부를 촉진할 뜻이 전혀 없다. 1951년 제정 당시 금지법이었다가 1995년에 규제법으로 바뀐 게 그나마 발전이라고 할까. 모금 목표액이 3억원을 넘으면 시·도지사에 신고해야 하고 전체 모금액에서 2%만 모금비용으로 쓸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30%까지 사용할 수 있다. 또 세제혜택을 주는 금액은 개인이 소득의 10%, 법인은 5%이며 법으로 지정되지 않은 기부금은 그나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런 것들부터 고쳐야 한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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