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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 "세노야" 가수가 저예요"/ 30여년만에 첫 콘서트무대 김광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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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 "세노야" 가수가 저예요"/ 30여년만에 첫 콘서트무대 김광희 씨

입력
2003.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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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국민 애창곡 '세노야'를 작곡해 최초로 불렀던 '얼굴없는 가수'가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정식 콘서트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이 달 말 서울 명동 YWCA 청개구리홀 무대에 서는 김광희씨. 그는 현재 한양대에 출강하는 선생님이자 여성작곡가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중견 작곡가다."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이가 공연장에 나와 얼굴을 내놓고 대중음악을 부르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어 결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잊혀져 가는 포크문화를 위해 용기를 냈어요."

30여년 전 그녀는 대중가요 작곡과 노래부르기에 흥미를 가진 서울대 작곡과 학생이었다. 그러나 엄한 가풍과 학교의 금지로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할 수 없는 처지. 그래서 작곡한 노래에 방의경, 양희은 등의 이름을 붙였고 가명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1970년 가을 김민기로부터 고은 시인의 시 '세노야'에 맞춰 작곡을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온다. 김민기는 친구의 동생.

"월요일 기독교방송국에서 방송예정인데 금요일 날 시를 받아 토요일에 피아노로 몇 시간 만에 곡을 만들었어요." 노래는 다른 가수가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방송당일 방송국측에서 '작곡가 본인의 노래로 방송을 하면 좋겠다'는 요청이 강력히 들어왔다. "학교에서 쫓겨난다고 펄쩍 뛰었어요. 이름은 절대 내지 않고, 일주일 동안만 방송에 내보낸다는 조건으로 녹음을 했어요. 반주는 민기씨가 맡았죠."

세상에 던져진 '세노야'의 반응은 대단했다. 매일같이 신청엽서가 산더미처럼 날아들어 4개월이 지나도록 그녀의 노래는 계속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가수 이름도 없이 노래만 나오는 베일에 싸인 존재로 학생층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다가 그 바톤을 양희은에게 정식으로 넘겨주면서 '세노야'가 폭넓은 대중 인기가요가 된 것.

김광희씨는 70년대 초 많은 포크 가수들의 앨범작업을 도와주었다. 금지의 대명사인 김민기의 71년 데뷔 앨범에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반은 단 한 장뿐이다.

대학졸업 후 김광희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 주립대학원에서 작곡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1978년 귀국, 지금까지 한양대, 국민대, 추계예술대에서 강의와 현대음악 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김민기가 기획하는 '지하철 1호선' 뮤지컬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요즘 너무 지나치게 랩송과 10대 위주의 장르가 판을 치는 게 안타까워요. 시간이 나면 김민기씨와 음악을 한번 같이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좋은 시인이 지은 아름다운 노랫말이 있다면 곡을 붙여 봤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대중 무대에 설 용기가 생긴 것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터넷에 전문게시판까지 만들어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정성스런 포크 팬들의 역할이 컸다. "항상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걱정해 왔는데 이번 공연으로 작으나마 보답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김광희씨는 26, 27일 명동 YWCA 청개구리홀에서 열리는 '70년대 포크 디바 조인트콘서트'무대에 윤연선 박영애 등과 함께 오른다. 공연문의> 02-2231-7248

/글 사진=최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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