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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임금피크제

입력
2003.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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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동시장에도 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업원 1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 평균 연령은 1990년 32.6세였으나 지난해 36.7세로, 10여년새 4세 높아졌다. 하지만 '사오정' '오륙도'에 이어 '삼팔선'이란 용어가 회자될 정도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터에서 밀려나는 것도 오늘날 직장인들의 자화상이다.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올 7월 신용보증기금이 국내 최초로 시행에 들어간 임금피크제는 중장년층이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해법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정년을 보장하거나 또는 정년 이후 계속 고용이 가능한 대신에 일정 연령이 지나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줄어들어 이에 대한 반감도 거세다.임금피크제 도입해야 하나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년(58세)을 채운 직원이 단 1명도 없었다. 정년에 이르기 3,4년 전에 명예퇴직하는 것이 관행화해 있었던 것.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올해 55세가 된 직원 10명은 계속 일선에 남아있게 됐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중장년층의 근로욕구는 커지는 반면 일자리는 불안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55세 이상 취업인구 가운데 상용근로자는 10.9%에 불과하고, 정년퇴직은 근로자 1,000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높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고령근로자에게 일자리를 내주기를 꺼려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부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은 연공급제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한 중고령자의 정년보장 및 정년 후 계속 고용은 불가능해 임금수준을 생산성에 맞춰 낮추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연공급적 임금체계에서는 장기근속 고령자일수록 임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기업은 중고령자를 해고의 주요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양진석 전문위원은 "우리의 경제 수준에 비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다"며 "인건비 부담이 해소되지 않고는 고령자의 일자리 확충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성과에 따른 연봉제로 가는 과도기에 재계가 임금피크제를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년' 을 연장할 것인가

노동계와 재계는 임금피크제가 국내 현실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를 놓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노동계의 반발이 더 크다. 신용보증기금이 은행 및 공기업 30여곳의 인사담당과 노조관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에 인사담당자의 75%가 찬성한 반면 노조는 35%만이 찬성했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가 임금 삭감의 도구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정년을 연장하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면 사실상 정년만 앞당겨지고 임금은 오히려 삭감될 것"이라며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는커녕 기업의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남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경우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으로 산정되는 퇴직금이 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계는 인건비 절감 등 기업의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고 일단 긍정적이지만, '정년 연장'을 전제로 한 임금피크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총 관계자는 "어차피 정년이 실효가 없는 상황에서 정년 보장도 근로자에게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임무송 임금정책과장은 "정년을 연장하느냐 정년을 보장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고령자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가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임금피크제 사례

임금피크제는 생산성과는 상관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도록 돼있는 연공급체계가 보편화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심도깊게 논의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1년여간의 노사협의를 거쳐 국내 기업중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 올해 55세가 된 직원 10명이 적용 받고 있다. 55세가 되면 일반직에서 별정직으로 직군을 전환, 채권추심이나 소송수행 등의 직무로 옮긴다. 별정직 전환 후 임금은 3년간 연차적으로 줄어든다. 첫해에는 종전 임금의 75%, 그 이듬해는 55%, 3년째는 35%를 준다. 당초 정년인 58세는 보장받는다. 퇴직금상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직군 전환 전에 퇴직금을 중간정산하고, 이후 3년은 변경된 급여를 기준으로 퇴직금을 계산한다.

일본의 경우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정년 이후 재고용과 근무연장을 통해 65세까지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은 1996년 24.3%에서 지난해 68.3%까지 늘었다. 일본의 경우 정년 60세가 의무화해있기 때문에 퇴직 후 고용을 연장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제조업체인 산요(三洋)전기는 2000년부터 노사합의로 60세 이후 고용연장제도를 도입했다. 정년은 60세이지만, 55세부터 임금의 25∼30% 정도를 덜 받고 대신 65세까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정년까지는 현직을 유지해주지만, 60세 이후에는 재고용 후 고령층에 맞는 직무로 이동하게 된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부연구위원은 "우리의 경우 정년도 제대로 보장이 안되고 있기 때문에, 정년고용 보장형 임금피크제 모델이 현실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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