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추송웅씨 잘 있어? 당신 하늘로 떠나던 날 내가 조사를 맡게 되어 있었어. 어이쿠 조사라니. 난 한 번도 조사를 해 본 적이 없었잖아. 장례식을 진행하던 연출가 권오일 선생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동창 대표의 조사 다음으로 날 마이크 앞으로 불러 세우려 했지. 하지만 내 엉덩이는 본드로 붙인 것처럼 의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어. 그런데 말야 송웅씨, 조사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난 차라리 노래 한 곡조를 뽑고 싶더라고. 적어도 우리들의 광대 추송웅의 장례식이라면 뭔가 그렇게 평범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우리가 한창 어울려 다니며 연극을 할 1960년대 전라남도 전역을 돌며 새마을 연극을 할 때였지. 차범석 선생님의 '쌍둥이의 모험' 공연할 때 생각나? 버스 한 대 대절해서 보름 남짓 돌아다녔을 때 굴비로 유명했던 영광이던가, 지긋지긋하게 땀 범벅이던 양파 산지인 무안이었던가, 아니면 장성에서였던가. 껌 씹는 소리 때문에 도저히 연극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자기가 돌연 공연을 중단하고 관객을 향해 소리쳤지. "껌좀 씹지 말아 주세요. 대사를 할 수가 없단 말예요!"
송웅씨와 나는 같이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상대역을 했고, 다투기도 많이 했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지. 송웅씨가 극단 자유를 떠난 뒤 창고 극장에서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열풍을 일으켰을 때 혼자 극장에 간 적이 있어. 창고 극장은 관객들로 초만원이고 숨통이 막힐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어. 까만 턱시도 차림에 원숭이 분장을 한 송웅씨의 연기가 너무나 멋지더라. '야 이것 봐라. 추송웅씨 놀랍게 변신했네. 정말 멋지네. 이제야 이 배우의 진가를 볼 수 있게 됐군.' 그러면서도 그 순간 내 안에서는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지. 그래 나도 모노드라마 할 거야.
연극이 끝나고 분장실로 찾아갔더니 송웅씬 날 보더니 눈물까지 글썽이며 모든 피로가 다 가신 것 같다며 좋아했지. 우린 서로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어. 어느 연극에서나 튀기를 주저하지 않는 배우, 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배우 추송웅.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든든한 밑천 삼아 자신감을 키운 그대. 사막의 신기루처럼 우리 연극계에 기적을 만들어낸 정말로 장한 송웅씨. 자기 같은 친구를 가졌다는 게 나는 자랑스러워.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오직 자기만의 세계.
송웅씨 혹시 함현진, 추송웅, 박정자가 같이 만들어냈던 작품을 잊지는 않았겠지. 지금은 우리 남편이 된 이 소위 부탁으로 강원도 군부대에 위문 공연 가서 했던 '우정' 말이야. 우리 이 연극하면서 환갑 때 서로 돌아가며 공연하자고, 우리 셋의 우정 영원히 변하지 말자고 다짐했었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나만 남았잖아. 현진씨랑, 송웅씨랑 모두 가버렸으니 난 누구하고 '우정' 공연을 하니?
송웅씨 난 자기 아들 상록이와 상미가 무대에 서는 걸 종종 봐. 얼마 전 연강홀에서 상록이가 나오는 뮤지컬을 봤는데 말투며 몸짓이 정말 아버지를 쏙 빼 닮았더라. 나는 송웅씨가 죽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다만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을 뿐. 사실 같은 서울에 살면서 바빠서 일년에 한 번도 제대로 못 만나는 게 우리들이지. 그리고 또 이민 가서 못 만나는 경우도 있어. 그냥 서로 헤어졌을 뿐이야. 잠시 동안. 셰익스피어의 한 마디를 인용해 볼 게.
"인생이란 다만 걷고 있는 그림자. 주어진 시간에 무대에서 서성대다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초라한 단역 배우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바보가 요란스럽게 광기에 찬 아무 뜻도 없는 말을 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광대 추송웅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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