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몸짓에 패션은 완성된다어렸을 때는 꺽다리 전봇대 고목나무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키 크면 싱겁다’는 소리와 ‘멀대처럼 키만 크다’는 얘기가 제일 싫었다. 관심도 없는 농구부와 배구부 코치선생님들에게 수시로 불려가서 입단회유를 받았다. 혹시나 키가 줄어들지는 않을까 습관적으로 등을 구부정하게 말아넣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어라, 언제부터인가 키만 크다가 키도 크다로 바뀌었다.
무대로 나가기 1초전이 가장 긴장된다. 온몸의 피톨이 쏟아져나오겠다고 미친듯이 아우성치는 느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무대에 척 나서면 관객의 시선이 집중된다. 거짓말처럼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저절로 발걸음이 나긋나긋해진다. 이건 숫제 마약이다. 무대위에서 나는 우상이 된 것 같다. 행복하다.
무대 뒤에서 모델은 헬퍼 다음으로 꼬봉이다. 디자이너가 지시하는 대로 해야 하고
옷이 아무리 난해해도 멋지게 입어내야 한다. 무대위에서 나는 이 옷을 위해 존재한다. 디자이너의 작품에 마침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나, 모델의 임무.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나에겐 이 옷을 통해 디자이너가 말하고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걸 원하는 것이 ‘건방지다’니.
아름다운 몸이 권력이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클럽이나 바에 놀러가면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시선을 느낀다. 부러움, 찬탄, 혹은 시샘. 그러나 하늘이 주신 선물인 몸은 영화가 짧다. 패션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이 바닥에는 젊은 피에 목마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상에 섰다는 것은 그만큼 빨리 식상하게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모델 이후의 삶은 늘 물음표이다.
/글·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사진=홍인기·왕태석 기자
패션모델 되려면…
1. 모델에이전시/모델아카데미 모델라인과 모델센터 DCM 등 모델스쿨을 끼고있는 모델에이전시와 에스팀 처럼 모델매니지먼트와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케이스 등이 있다. 보통 3개월간 워킹과 연출법 등을 교육시키고 '될성부른 떡나무'라고 판단되면 이후 3개월에 걸쳐 일을 연결시켜주면서 가능성을 좀 더 지켜본뒤 정식 계약을 체결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확실한 모델 등용문.
2. 모델콘테스트
SBS슈퍼모델대회나 엘리트모델대회 같은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다. 대회규모가 크고 공중파나 케이블방송 등을 끼고 할수록 공신력이 커진다.
3. 대학교 모델학과
현재 동덕여대를 비롯 수원대 동서울여대 등에 모델학과가 개설돼있다. 프로야구선수가 대학에 가는 격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학력'이나 모델 이후의 삶을 생각해서 대학진학율은 높아지는추세다.
4. 길거리 캐스팅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모델에이전시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는 경우. 대표적인 사람이 톱모델인 한혜진 김원경 등이다. 에스팀 김소연실장이 모 모델컨테스트에서 떨어진 고교생을 6개월간 좇아다니며 가까스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 톱스타로 키운 경우. 길거리캐스팅은 이태원이나 홍대입구 클럽거리 등에서도 흔히 이뤄지는데 잡다한 연예매니지먼트 명함과 혼동하지않는 것이 중요하다.
패션모델의 비애
1.연예인과 함께 패션쇼 설 때 패션쇼의 뒷무대에는 선후배도, 톱이나 신인의 구별도 없다. 오직 작품과 그것을 전시할 '살아있는 마네킹'이 있을 뿐. 그런데 연예인이 끼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우선 연예인은 옷입을 장소를 따로 마련해준다. 물론 돈도 훨씬 많이 받는다. 무엇보다 화나는 건 연예인이 자기가 모델이 되고싶다고 찍은 옷은 그 자리에서 벗어줘야 한다.
2.오디션서 호출되지 못했을 때 패션쇼에 출연할 모델은 공개오디션을 통해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 수많은 모델들이 차례로 워킹을 선보이고 나면 10번, 15번 등 결정된 모델의 번호가 즉석에서 불린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 것. 모델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것 만큼 씁쓸한 치욕은 없다.
3.모델은 무조건 벗어야한다고 생각할 때
톱모델 A씨의 케이스. 잡지사 해외촬영에 동행했는데 유명관광지였던 촬영 현장에서 가리개 천막조차 없이 그냥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을때. 모델도 여자인데 이럴수가 싶었다.
■요즘 각광받는 스타일
'여자는 귀족소녀, 남자는 가녀린 꽃미남'
모델에이전시 에스팀의 신귀란 실장은 요즘 패션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모델의 프로필을 이렇게 정리했다. 우선 남녀 불문하고 기본은 '귀티'. 여기에 여자는 소녀 분위기가 나야 하고, 남자는 마르고 하얀 피부에 어딘가 여성적인 느낌이 살아야 인기가 있다. 우락부락한 남성미는 사절이다. 패션트렌드가 캐주얼해지는 추세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
패션모델로서 가장 이상적인 신체조건은 여자는 키 177∼178㎝, 몸무게 52∼53kg. 176㎝라고 해도 얼굴이 작고 예쁘면 일단 기준치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 신체사이즈는 33-24-35가 가장 무난하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키 174㎝ 정도면 패션모델로 입문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요즘 그 정도 키로 모델에이전시 문을 두드렸다가는 '웬만하면 그냥 가시죠' 소리 듣기 십상이다.
남자들은 오히려 체구가 작아지는 추세다. 요즘 가장 선호되는 신체조건은 187㎝에 허리 29인치 정도. 클수록 좋다는 키 선호가 없어졌고 허리는 보통 30∼31인치에서 점점 가늘어져 내년께에는 27∼28인치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일부 남자모델들은 쇼를 앞두고 오이로 밥을 대신하며 체중을 감량하기도 한다.
나이도 남녀간의 차이가 많이 난다. 여자는 갈수록 어려져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나이는 고교 1, 2학년생들. 신 실장은 "요즘은 어떻게된게 '대학생' 소리만 나와도 늙어보일 만큼 중·고생들이 많이 모델계에 입문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남자는 20대 후반 정도로 약간 나이가 있는 쪽이 선호된다.
신실장은 "패션모델이라는 것이 공부를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난 몸을 갖고 하는 일이다 보니 예전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이 했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가정에서 지원을 많이 받는 먹고 살만한 집안 출신들이 더 강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얼마나 버나
패션모델의 삶을 표현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는 것은 '모아니면 도'다. 패션모델의 수입이 그런 경향을 반영하는 가장 극명한 예다.
여성의 경우 장윤주 한혜진 송경아 김원경 장경란 등 톱A급 모델들은 국내 브랜드 패션쇼 출연료로 보통 85만∼100만원을 받는다. 같은 톱모델이라도 박둘선이나 홍진경 등 방송활동을 겸하는 모델들은 200만원까지도 받는다. B급은 30만∼55만원, C급은 15만∼30만원선.
명품브랜드들이 여는 패션쇼 출연료는 이보다 15∼20% 정도 떨어진다. 톱A급이 70만원선. 언뜻 보기엔 비싼 명품브랜드 패션쇼 출연료가 더 많을 것 같지만 사실은 매출규모가 작은데다 '명품쇼'라는 자부심 때문에 출연료가 낮아도 톱모델들이 출연한다.
유명디자이너들이 참가하는 국내 컬렉션 무대 출연료는 이보다 훨씬 떨어져서 40만∼50만원선이다. 보수를 올려달라고 하면 "디자이너 컬렉션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라는 타박이 되돌아온다.
톱스타들의 경우 보통 한달이면 10번 이상 무대에 서기 때문에 수입은 웬만한 대기업 부장급에 육박한다. 워낙 건당 보수를 받는 체계라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않지만 CF출연 없이 순수히 패션쇼와 잡지촬영 등으로 얻는 수익이 월 700만∼1,000만원 정도다. 단 시즌을 타는 직업인 만큼 월 소득이 곧 연소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A급 모델들이 '모'의 대우를 받는다면 신인모델은 '도'에서 맴도는 비참한 상태다.
신인급 모델의 출연료는 15만원선. 통상 6:4인 모델에이전시 커미션을 떼주고 나면 손에 10만원 안팎만 남는다. 더욱이 신인들은 무대에 설 기회가 한달에 기껏해야 한두번에 불과하다. 따라서 상당수 신인모델들은 특별한 주변의 도움이 없는 한 옷가게에서 숍마스터로 일하는 등 부업에 생계를 의존한다.
남성모델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남성복 패션쇼가 드물기 때문이다. 컬렉션때에도 남성복 패션쇼는 기껏해야 1∼2개에 불과하다. 당연히 연수입이 전혀 없는 모델도 있다. 때문에 부업이 필수다. 보통 옷가게 점원이나 바, 레스토랑 등에서 일한다.
김민준 강동원 차승원 유지태 조인성 등 브라운관과 영화를 누비는 많은 스타들이 모델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남성모델들의 꿈은 대부분 연예계로 향해있다.
/이성희기자
■패션쇼 막전막후
스파(SFAA)컬렉션 오프닝을 장식한 디자이너 박윤수씨의 패션쇼 현장. 흥겨운 배경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패션기자들과 VIP들, 단골고객들, 유명디자이너의 쇼를 현장에서 보려는 학생들, 현장정리를 담당한 스탭들까지 족히 500명은 넘는 사람들로 장내가 출렁인다. 쇼 시작까지는 길어야 5분. 부산함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배경음악이 사라진다. 이미 입장해 무대 맞은편에 자리잡은 50여명의 사진작가들은 거대한 망원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동도 하지않는다. 이윽고 불이 꺼진다. 수백명의 시선이 오직 한 점에 꽂힌다. 영원같은 단 몇초의 팽팽한 긴장감. 순간 빛이 번쩍인 걸까,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조명을 뚫고 그녀가 걸어나온다. 현대판 여신의 등장이다.
/글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패션쇼는 마약이다
"컬렉션 무대에 서는 건 일종의 마약과 같아요. 불과 10∼15초의 짧은 순간이지만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위치에 서있어요. 우상이 된 기분이랄까, 그 순간 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성이거든요."
모델들이 걸어다니는 무대을 로드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길. 캣워크(cat walk)라고도 한다. 허리와 엉덩이를 유연하게 흔들며 걷는 모델들의 걸음걸이가 흡사 고양이의 걸음걸이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로드의 길이는 25m정도. 그러나 30m에 이르는 긴 무대도 많다. 이 거리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이다. 한걸음이 1초, 1m로 계산된다. 한 무대에 보통 2명에서 3명의 모델이 엇갈려 나오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주목되는 시간은 15초 정도다. 하품 한번 하면 끝날 그 짧은 시간에 모델들은 자신이 입은 옷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야 한다. 우아하고 도도하고 섬세하고 나른하고 경쾌하고 꿈결같이.
그 우아한 걸음이 무대 뒤로 한 발자국 내딛는 그 순간부터는 100m 경주로 변한다는 것을 남들은 알까.
쇼는 리듬, 리듬이 깨지면 환상도 없다
패션쇼가 한창인 무대 뒤는 모델이나 모델의 옷입기를 돕는 헬퍼, 디자이너, 쇼 연출자가 뒤엉켜 말 그대로 무아지경이다. 무대에서 막 들어온 모델이 옷을 갈아입는 데 드는 시간은 기껏해야 10초. 그동안 벗고 입기를 마쳐야 2,3초의 여유를 두고 다시 무대로 나갈 수 있다. 그러다보니 무대에서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델의 손은 바지 지퍼를 내리거나 셔츠 단추를 풀고 발은 자기 옷이 걸린 행거를 향해 달린다.
무대 뒤 모델들이 무대로 나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와이드TV가 놓여있다. 무대밖 모델들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기 위한 모니터다. 모델들의 순서와 입장을 조절하는 무대 조감독이 마침 한 모델의 이름을 불러제낀다. 다음 순서인데 아직 입구에 오지를 않은 것이다. 한쪽 구석에서 "어떻게, 어떻게…"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델이 뛰쳐나온다. 홀터넥 원피스의 목뒤 끈이 아직 매여지지 않아 가슴부위를 손으로 여며쥔 채다. 두세명의 헬퍼가 좇아오면서 가까스로 끈을 묶는 순간, 모델의 발은 벌써 입구 문턱을 넘어서고있다.
이쯤되면 패션쇼 시작 직전 메이크업을 하면서 디지털카메라를 찍고 음악에 맞춰 트위스트를 추던 유쾌함과 여유는 이미 손톱 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때만 해도 모델들이 꺼린다는 이유로 남자 카메라기자들을 피팅룸에서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T자형 팬티 한장을 달랑 걸친 채 벌거벗은 가슴을 누가 들여다보거나 말거나 신경 쓸 틈이 없다. 패션쇼는 리듬이다. 리듬이 깨지는 순간, 마법도 풀린다.
처음과 끝은 최고의 몫
모델들에게는 패션쇼의 피날레와 오프닝을 누가 장식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건 디자이너의 뮤즈, 여신중의 여신으로 선택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영광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옷인 만큼 제대로 입고 표현하기가 쉽지않다.
이날의 피날레는 톱모델 송경아가 맡았다. 무대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송경아가 거대한 드레스를 입고 입구로 다가선다. 2m쯤 길게 늘여진 뒷부분을 헬퍼가 들고있지만 언뜻 보기에도 무게가 만만치않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피날레의 순간 무대 앞으로 한걸음 내딛던 모델의 몸이 휘청한다. 무려 400야드의 천으로 만들어진 드레스는 무게만 30㎏이 넘는다. 178㎝ 52㎏의 가냘픈 몸에 10㎝의 하이힐을 신은 채 끌고나가기엔 벅찬 무게다. 더구나 아름다운 외형과 달리 내부엔 조각조각의 천을 엮어놓은 수백개의 실이 서로 엉겨있어 조금만 다리를 들어도 하이힐에 실이 말려 넘어지기 십상.
거대한 드레스를 입고 동료가 아슬아슬한 행보를 계속하는 동안 무대뒤 스탭들의 시선은 일제히 모니터TV로 집중된다. 모델이 또한번 휘청하는 순간 누군가 '송경아 파이팅!'하고 소리를 지른다. 여기저기서 파이팅이 연신 터지고 드디어 로드 끝에 선 송경아에게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지면 무대 뒤에선 울음보와 환호성이 동시에 터진다.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자부심. 이 순간 만큼 모델인 자신이 자랑스러운 적은 없다.
무대뒤… 신데렐라는 없다
20여분의 쇼가 끝나자마자 피팅룸은 순식간에 비워진다. 옷을 갈아입는 것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모델들은 옆 행사장으로 옮겨간다. 1시간 반 간격으로 있는 쇼에 겹치기 출연하는 모델들이 많기 때문에 곧바로 다른 쇼 출연준비를 하는 것이다. 톱모델의 경우 거의 모든 쇼에 서기 때문에 하루 다섯번 쇼에 서면 그때마다 화장과 머리를 다시 해야 한다. 3일간의 컬렉션을 뛰고나면 피부트러블이 심해지고 체력소비가 많아 약 한달간은 거의 외부활동을 하지못한다.
패션모델은 체력소모가 심한 직업이다. 한번 컬렉션 무대에 서기위해 오디션, 피팅(입을 옷을 몸에 맞게 조절하는 작업), 리허설 등을 거쳐야한다. 모든 작업은 다 서서 진행된다. 옷과 모델을 맞춰보느라 서너시간씩 걸리는 오디션에서도 '디자이너 선생님들 작품 구겨질까봐' 감히 앉아있는 것은 꿈도 못꾼다. 리허설에서는 25m 런웨이를 열번도 넘게 오락가락해야하는데 워낙 파워워킹을 하다보니 '밥심'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
당연히 모델들에겐 식사준비를 제대로 해주는 디자이너가 인기있다. 최근엔 외국 패션쇼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들이 많다보니 대우가 나아져서 간혹 식사를 부페로 차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때운다. 한 패션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디자이너의 옷을 제대로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모델이라는 점에서 패션쇼 시작전 샴페인을 제공하고 손이나 발 마사지를 해주는 등 많은 공을 들이는데 우리는 일용직 노무자 수준으로 대우가 열악하다"고 말한다.
체력소모가 심하고 워낙 서서 하는 직업이라 모델계에는 직업병도 꽤 있다. 우선 발바닥의 군살과 티눈은 기본. 허리를 많이 흔드는데다 파워워킹을 하느라고 무릎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관절이 안좋고 허리디스크를 얻는 경우가 흔하다. 대부분 골반도 비뚤어진다.
여신은 오래 머물지않는다
패션모델의 딜레마는 모델로서 성공할수록 퇴장속도도 빠르다는 것이다. 패션의 속성이 새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당대 톱모델로 군림하고있는 장윤주 송경아 박둘선 노선미 장경란 등이 20대 중반이지만 벌써 7∼8년차 고참모델에 속한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늘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당연히 모델들은 톱모델 소리를 들을 때 이 바닥을 떠나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나 막상 할 일은 많지않다. 모델이라는 직업 자체가 하늘이 준 선물인 아름다운 몸매를 기반으로 시작한 것이라 다른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않은 까닭이다. 남자모델들의 경우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 때문. 그러나 여자모델의 경우 영화계쪽에서 손짓은 많아도 패션모델에 대한 선입견 탓인지 주로 벗고나오는 에로물 역할이 대부분이다.
가수 데뷔를 계획중인 장윤주씨는 "세계적으로도 갈수록 어린 모델을 선호하는 형편이라 패션모델들은 정상에 있을 때 우아하게 퇴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면서 "다만 A급 모델들의 경우 오히려 B급에 비해 무대위의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쉽지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모델계 불문율
1.옷에 대한 평가는 금물 모델활동을 하면 자연히 옷에 대한 감식안이 생기지만 절대 겉으로 발설해서는 안된다. 그만둘 생각이라면 모를까.
2.선배는 왕이다
전국에서 온 모델들이 함께 활동하는 모델계에서 위계질서는 다양한 출신배경의 모델들을 일사불란하게 컨트롤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아무리 톱모델이라고 해도기수(데뷔년도)가 위인 선배한테 먼저 음식을 건네주고 비운 그릇을 치워주는 일을 해야 한다.
3.누구도 믿지말라 '모델끼리 뭉치면 열흘을 못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비밀이 없는 동네라는 뜻.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젊은 여성들이 몰려있는데다 모델이라는 직업 자체가 워낙 흥망성쇠의 부침이 심해 질투와 시기가 상존한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일은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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