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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시골에 사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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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시골에 사는 재미

입력
2003.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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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소나기가 사흘 연속 퍼부었다. 서울에서는 첫 눈이 내렸다는데 이 곳은 남쪽이어서인지 이제서야 겨울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겨울이 오겠거니 싶어 겨울 준비를 서둘렀다. 헌 옷가지를 수도 계량기 검침함에 구겨 넣고, 늙은 호박에도 보온 덮개를 덮었다. 장독대에 묻어둔 무 항아리의 마개는 튼튼하게 손질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이 겪는 생활의 아기자기한 재미를 모를 것이다. 나의 겨울 준비를 돈으로 환산하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직접 몸으로 겪는 희열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치가 있다.

마당 한 켠을 보니 시래기가 시들어 가고 있다. 시래기의 억센 겉 잎은 나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강아지 세 마리의 죽을 끓이는데 소중한 재료다. 보드랍고 연한 속 잎은 시래기 된장국을 만들어 먹어도 되고 콩나물 국, 무 국에 넣으면 별미가 된다. 싱싱한 고등어라도 사는 날이면 시래기를 냄비 바닥에 두툼하게 깔고 된장을 살짝 풀어 넣은 국물에 갖가지 양념을 얹어서 은근한 불에 뭉근하게 조려 보라. 바깥 날씨가 차가울 때 뜨끈한 안방 아랫목에 앉아 고등어에 시래기를 얹어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이란!

늙은 호박은 어떤가. 두꺼운 겉 껍질을 살짝 벗기고 꼭지 부분을 도려내서 속 씨앗 파내고 칼로 둥글게 오려서 빨래 줄에 걸어 말리면 훌륭한 호박 엿 재료가 된다. 누런 설탕에 버무린 늙은 호박 속살을 곱돌솥에 켜켜이 앉혀 끓이면 달콤한 호박떡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박떡은 다섯 살 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다. 딸 아이는 평소에는 무엇이든 남에게 잘 나눠주는 데 호박떡 만큼은 반드시 혼자 먹겠다고 욕심을 부려 우리 가족에게 웃음꽃을 선사한다.

비가 개면 메주콩을 골라야겠다. 올해도 메주를 두어 말 쑬 생각이다. 그러고 나면 김장을 해야지 않나 싶다. 시골 촌부의 생활은 이처럼 조금은 고달프지만 대체로 행복하다. TV를 통해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접하면 부럽기도 하고 주눅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인생이란 자신의 현실을 즐기며 사는 것 아닌가. 오늘 저녁은 찹쌀 가루 풀어넣고 양대 콩 적당히 넣은 호박 범벅을 상에 올려야겠다.

/정금희 ·경북 봉화군 법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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