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2001년 6월 미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의 한 경찰관이 새뮤얼 퍼테인이라는 남성을 체포하는 현장에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도중 퍼테인은 "그 권리를 알고 있다"며 말을 잘랐다. "네 권리를 다 안다고?" 경찰관의 물음에 퍼테인은 "네"라고 대답했다. 경찰관은 미란다 경고를 끝내지 않은 채로 퍼테인의 총기 소지 여부를 신문, "그렇다"는 답을 얻었고, 그의 허가를 받아 집을 수색한 결과 권총 1정을 발견하고 퍼테인을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기소했다. 1966년 이래 피의자의 헌법적 권리로 인정돼온 미란다 원칙에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가. 퍼테인 사건은 미란다 원칙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다시 촉발했고 마침내 미 연방 대법원은 9일 이 사건과 미주리주의 패트리스 사이버트 사건에 대한 심리를 시작했다.퍼테인 사건은 미란다 법칙을 위반할 경우 피의자의 진술뿐 아니라 물적 증거까지 배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연방 항소법원의 판단은 소지한 총기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연방 항소법원은 "경찰관이 미란다 원칙을 완전히 고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낸 총기는 증거로서의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연방 검찰의 견해는 다르다. 연방 정부의 대리인으로 소송을 수행하는 시어도어 올슨 연방 법무차관은 "미란다 경고가 없었더라도 피의자의 자발적 진술로 얻어진 물적 증거까지 배척되는 것은 아니다"며 "하급심 판결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미란다 원칙은 1963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된 후 경찰 조사과정에서 검거 11일 전 정신지체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했다고 자백한 어네스토 미란다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무죄가 선고된 데서 유래됐다. 당시 얼 워렌 대법원장 등은 다수의견을 통해 경찰은 범죄 용의자에게 묵비권을 행사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통보했어야 했다고 판결했다. 그 이후 미란다 원칙의 헌법적 한계를 정하는 문제는 미 형사 재판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 거리가 돼왔다. 윌리엄 렌퀴스트 현 연방 대법원장도 "그 동안 50건 가량의 미란다 원칙 관련 사건을 심리했는데도 아직도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2000년 디커슨 사건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은 "미란다 경고는 단순한 법률적 지침 차원을 넘어서는 헌법적 원칙"이라고 못박았지만 그 후에도 수사기법 상의 문제를 들어 이 원칙 적용에 탄력성을 인정 받으려는 수사기관의 항변은 계속돼 왔다.
미주리주 시아버트 사건은 미란다 원칙 고지에 앞서 사건 관련 진술을 확보하려는 경찰관의 의도적인 행위를 반영하고 있다. 1997년 사이버트라는 여성의 트레일러 주택에서 발생한 방화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베테랑 형사 리처드 핸러헌은 새벽 3시 그녀를 깨워 범죄와의 연관성을 추궁했다. 마침내 그녀로부터 범죄 일부를 자백 받은 핸러헌은 잠깐 휴식을 취한 뒤 녹음기를 틀어 미란다 경고를 고지하고 사이버트에게 이전의 진술을 반복하도록 요구했다. 사이버트는 2차 진술을 근거로 유죄를 인정 받아 무기형 선고를 받았지만 미주리주 대법원은 경찰관의 미란다 원칙 고지 위반을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사건은 경찰의 현장 수사기법과 미란다 원칙의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USA 투데이는 변호인측의 말을 인용, "경찰관 훈련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과 관련한 '창조적인' 기법들이 가르쳐진다"며 "오늘날의 경찰관들은 미란다 원칙 성립 이전의 협박과 구타 대신 교묘한 신문 방법에 통달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변호인들은 대법원이 미란다 법칙의 예외를 인정한다면 이는 미란다 원칙과 마찬가지로 예외가 관행으로 굳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검찰측은 "그런 기법은 법의 허용 범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며 "2차 진술의 증거는 인정돼야 한다"고 항변한다. 카렌 미첼 미 법무부 부장관은 "고양이가 한번 가방에서 나오면 그 고양이는 가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현 대법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은 "법원은 경찰관들에게 미란다 원칙을 무시한 비책을 주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일선의 경찰관들에게 너무 많은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된다"며 "경찰관에게 변호사가 되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9일자 사설에서 "법원은 경찰의 미란다 원칙 준수 의무를 재확인해야 한다"며 "연방 대법원이 미주리주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는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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