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979>프랭크 시내트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979>프랭크 시내트러

입력
2003.12.12 00:00
0 0

1915년 12월12일 미국의 가수 겸 배우 프랭크 시내트러가 뉴저지주 호보켄에서 태어났다. 1998년 몰(沒). 이탈리아 이민2세로 태어난 시내트러는 성장기에 당대 최고의 크루너(crooner)이자 영화배우 빙 크로즈비를 동경했는데, 그는 결국 크루너로서만이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크로즈비를 넘어서는 대중 스타가 되었다.크루너란 낮고 부드러운 콧소리로 속삭이듯 노래하는(이것을 '크룬'이라고 한다) 대중 가요 가수를 가리킨다. 크로즈비는 일찌감치 마이크로폰의 도움을 받아 이 크룬 창법을 1930년대 대중 가요의 한 전형으로 끌어올린 바 있다. 1940년대까지 크게 유행한 크룬 창법의 대표자들로는 크로즈비와 시내트러 외에 루디 밸리, 페리 코모, 딘 마틴 같은 가수가 꼽힌다. 이 가운데 대중적 영향력이 가장 컸던 가수는 '목소리'(The Voice)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시내트러다.

시내트러의 노래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이 웨이'(May Way)일 것이다. 이 노래는 프랑스 가수 클로드 프랑수아의 샹송 '여느 때처럼'(Comme d'habitude)을 폴 앵커가 번안해 불러 영어권에 소개됐지만, 오늘날 '마이웨이'의 주인이 시내트러라는 데 항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노래의 1절 가사는 이렇다. "이제 곧 끝머리군/ 난 마지막 커튼을 마주보고 있어/ 친구여, 분명히 말하고 싶네/ 내 경우가 어땠는지 들어봐/ 내 삶은 충만했고/ 난 세상의 모든 길을 돌아다녔어/ 게다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그의 방식대로 산 시내트러의 삶에 참견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의 삶이, 공산주의를 기웃거렸든 극우세력을 대변했든 자유주의 정치가들과 어울렸든 마피아와 가까웠든, 늘 시세에 민감했다는 것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