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당시 여야 후보 진영의 비공식 대선모금 창구가 여러 개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불법 대선자금 규모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10일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에게 국민주택채권 112억원을 전달하기 앞서 현금 40억원을 다른 한나라당 관계자를 통해 전달했다. 현금을 받은 당사자가 누군지 검찰은 밝히지 않았으나 최돈웅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SK 비자금 100억원을 직접 수수했고 LG측에 추가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했던 인물이다. 삼성의 경우에도 최 의원은 40억원을 받은 이후 삼성 구조조정본부 윤모 전무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LG와 삼성 모두 추가 지원 자금은 최 의원이 아닌 서 변호사를 통해 전달했다. 최초 요청자와 실수령자가 다른 것에 대해 검찰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의사결정 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사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요청과 수령을 구분해 역할 분담을 했거나 아니면 당 중앙의 느슨한 통제 하에 개인 단위로 모금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대선 당시 주요 기업들은 각 후보 진영별로 복수의 정치인들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고 누구를 창구로 해야 할지 혼돈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은 "한나라당의 여러 관계자가 자금지원을 부탁, 누구에게 전달하면 좋을지 당측과 협의한 후 최돈웅 의원으로 결정했다"고 검찰에서 밝힌 바 있다.
즉 창구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개별 정치인별로 인맥이 닿는 기업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 때문에 요청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삼성과 LG의 경우, 최 의원으로부터 지원요청은 받았지만 서 변호사쪽이 보다 안전한 창구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요청이 있을 때마다 응한 결과 한 후보 진영에 여러 차례 돈을 건넨 기업도 상당수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5대 그룹 중 한 두 기업이 검찰조사에서 밝혀진 것 외에 별도의 불법 대선자금을 추가로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현재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모 대기업의 경우 지역 기반인 부산 지역 의원 3명이 모금창구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나 내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후보 선대본부측 역시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개별 수금 활동에 나섰던 정치인들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을 온전히 당에 전달했는지는 불투명하다. 기업 수사의 큰 윤곽이 잡히는 대로 창구역할을 자임한 이들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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