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할 당시 대학 당국과 문교부가 적극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의 80년대 행정문서를 입수한 결과 당시 대학 당국은 경찰과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동향보고서를 작성, 문교부에 제출했다"며 "동향보고서는 경찰과 문교부의 연계 하에 강제징집에 활용됐고 이 같은 행위는 87년 이후까지 계속됐다"고 밝혔다. 1기 의문사위 활동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대학생 강제징집은 81∼83년 이뤄졌으며 내무부, 문교부, 병무청, 보안사 등이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실제 대학 당국과 문교부 등의 조직적 개입이 문서로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관련 기록들에 따르면 대학 교직원, 학과 지도교수들은 경찰로부터 연행 및 훈방, 구속 등 학생들에 대한 조치를 통보받고 각종 모임과 집회, 유인물 배포 등 광범위한 학내 활동 정보를 수집, 동향보고서를 작성했으며 학생처장과 단과대 학장, 총장 결재를 거쳐 문교부 교육정책실에 보고했다.
관할 경찰서와 문교부 교육정책실은 학생들을 운동권 가담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관리했으며, 징집명단과 함께 '협조전'을 대학에 보내 강제징집에 따른 휴학 및 징계 등 학적변동조치를 요구했다.
특히 87년 2월 박종철군 사망 49재인 3월3일을 앞두고 서울대 교직원들과 문교부, 경찰청, 안기부 등 각 기관 관계자 10여명이 '학원안전대책'을 논의한 회의 문서도 발견돼 대학과 관련기관들이 상시 협의체제를 설치·운영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강제 징집됐던 A씨는 " 83년 5월 서클활동을 이유로 학교 앞에서 경찰에 연행돼 구속과 입대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며 "교수들이 찾아와 입영동의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신검이나 영장 발부 절차도 없이 당일 보충대로 인계됐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당시 학원업무 담당 부서는 없어졌으며,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실무자들은 정식 교육공무원이 아닌 특수직 종사자였다"며 "관련 기록들은 보존 연한이 지나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대학 당국과 문교부 등의 개입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을 거쳐 당시 대학 당국, 문교부, 경찰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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