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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푸른하늘, 500원짜리 셔츠… 케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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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푸른하늘, 500원짜리 셔츠… 케냐의 행복

입력
2003.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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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으로 11월의 대(大)우기가 끝 나가는 요즘 케냐의 하늘은 날씨, 시간의 변화에 따라 건기에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비 온 후 맑게 갠 한국의 하늘같이 청명하고 푸른 하늘색과 다양한 형태를 이루어 내는 낮게 깔린 흰구름, 여름을 맞은 초록의 나무, 풀이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삼박자로 만들어내는 장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흔히 솜털 같이 새하얗고 포근한 느낌의 구름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의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어떤 날 구름을 보고 있다 보면 오염이 안된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들이 갑자기 생겨났나 착각할 정도이다.하지만 케냐의 우기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냥 감탄하고 있다 보면 현실의 문제는 간과하기 십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들의 의복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지인 시장으로는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안전하다는 '토이 마켓'이라는 곳에 가면 구호물자로 들어오는 중고 옷 뿐만 아니라 신발, 가방 등 여러 물건들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그 곳의 열악한 환경은 백화점에 익숙한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맨 땅에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들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틀에 옷들을 걸어놓거나 쌓아놓는데 비 온 후에는 땅이 질어 한 발 떼기도 힘들 정도로 걷는 것이 불편해 급한 경우에도 우기에는 피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센스와 인내심만 있으면 한국 돈 500원으로 아이의 T셔츠를, 3,500원으로 어른 옷을 구입할 수 있다. 외국 명품도 가끔 눈에 보이고 품질도 훌륭해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토이 부티크'로 통한다. 한편으로는 구호 물자로 들어온 물건을 돈 있는 외국 사람들이 구입해선 안 된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을 수 있으나 케냐인들의 취향과는 판이하게 다르므로 케냐 경제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으로 이용하고 있다.

경찰을 못 믿기 때문에 즉결 심판을 원하는 사람들의 몰매로 5인조 강도들이 현장에서 즉사하는 치안 부재의 케냐에서 버티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순간의 행복감, 서울과는 달리 유행을 쫓는 것은 고사하고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중고품 옷으로도 감탄하며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허술하고 지저분한 케냐의 공항이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국에서 비싸고 사치스러운 것들에 익숙했던 내 모습이 케냐의 자연에 동화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멋모르고 사회 분위기에 단순히 따라 갔던 한국의 사치스러운 한 여성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하나씩 깨우쳐 주고 있는 케냐에서의 삶에 진정으로 감사한다.

류 은 숙 케냐/(주)대우인터내셔널 나이로비 지사장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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