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없이 어떻게 살아요. 다들 떠나는데 우리라도 지켜야죠." 경기 화성시 봉담읍 동화리 국립 한국농업전문학교(학장 박해상) 1학년 농업공작시간. 비닐하우스 뼈대가 되는 철근 용접 작업을 하던 장영진(20·축산학)군이 "하필 농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전남 장흥에서 온 김재종(20)군은 "농사만큼 정직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실패따윈 두렵지 않다"고 했다. 일반대학의 논문에 해당하는 농업경영계획서를 준비하며 곧 살벌한 농업현실에 던져질 3학년 졸업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고향 경북 성주에 내려가 신품종 참외를 기를 꿈에 부푼 강병길(23·채소학)씨는 "꼭 성공하겠다"며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수입 농산물이 물밀 듯 밀려오고 농자(農者)가 '천하지대봉'이 된지 오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남들 다 가는 대학 팽개치고 "공부해 땅이나 부치겠다"고 나선 젊은이들이 있다.
이 학교는 진짜 농사꾼을 양성하는 농업사관학교다. 1997년 개교 첫해 경쟁률이 4대1, 지난해도 1.4대1을 기록해 정원 미달사태에 자동차 경품까지 등장하는 웬만한 지방대보다 낫다. 올해는 유례없는 취업난의 여파때문인지 원서교부를 시작하자마자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입학생 모두에게 교육비와 기숙사비 일체가 국비로 지원되고 1년 동안 해외연수(2학년)를 갈 수 있는데다 졸업 후엔 농사를 짓는 것으로 군복무를 대체해 병역특례혜택(제도 유지시)까지 주어진다. 게다가 2,000만∼1억원의 영농정착자금도 금리 4%, 5년 거치 15년 상환 조건으로 지원한다.
480명 수용규모의 기숙사, 농기계 교육장, 작목별 수확 후 처리실, 버섯 재배사 등 각종 실험실습실과 지척에 있는 농촌진흥청의 각종 시험포장을 실험실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 시설도 일반 농대가 감히 따라오지 못한다.
무너지는 우리 농업을 세우기 위한 혜택이라 쳐도 너무 많다. 농업을 꺼리는 현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비관 자살한 선배가 있다" "농민집회에 갈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결혼이 가장 걱정이다" 등 학생들의 남모를 고민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뿐이랴. 학생 모집하러 산골 고등학교를 방문한 교수는 "일반대 농대도 아니고 농업학교를 누가 가느냐"는 코방귀를 듣기 일쑤였고 "공부 못하는 애들 수업이나 따라오느냐"는 비아냥도 감내해야 했다.
학생과 교직원이 힘을 얻는 건 졸업한 선배들의 성공사례다. 지금까지 855명이 졸업해 취업하거나 4년제 대학에 편입한 10여명을 빼곤 모두 농촌에 정착해 학교에서 배운 선진영농기술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 엉겁결에 온 학생들도 차츰 학교에 정을 붙이고 "허드렛일이나 거들던 놈인데 졸업하곤 내가 머슴질 한다"는 한 졸업생 부모의 말이 전설처럼 학교를 맴도는 것도 그 때문.
그렇다고 아무나 무턱대고 들어올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필요 없으나 고교 내신성적과 영농기반(땅), 농사를 전업으로 하겠다는 본인과 부모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본인과 부모가 함께 참석하는 이색 면접이 이뤄진다.
박해상 학장은 "경제적 부담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고 반짝이는 아이템을 개발, 틈새시장을 개척해 무너지는 농촌을 다시 살리는 인재를 기르는 곳"이라며 "농업에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는 젊은이들의 도전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3년제인 학교는 2학년 때 국내외 영농현장에서 1년간 현장체험학습을 하고 일반 전문대학과 같은 전문학사 학위를 받는다. 식량작물(35명) 특용작물(40) 채소(30) 과수(35) 화훼(40) 축산(60) 등 6개과 240명을 모집한다. 인기가 높은 축산과는 한우 낙농 양돈 양계, 특용작물과는 약용 특용 버섯 등으로 전공을 나눠 선발한다.
원서교부는 이 달 30일까지. 고졸 이상 만 37세까지 응시할 수 있다. 문의 (031)229―5230(홈페이지 kn.ac.kr)
/화성=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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