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차가운 바다에서 50여시간의 사투를 벌인 세종기지 강천윤(39) 연구반장, 김정한(27) 연구원, 최남열(37) 대원이 극적으로 구조된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인근 외국기지 대원들의 필사적인 수색활동과 특수소재로 만든 방한복, 그리고 살을 에는 혹한과 공포속에서도 '살아야 겠다'는 대원들의 생존 의지가 목숨을 건지게 한 것이다.강 반장 등 3명을 태운 '세종2호' 고무보트가 남극의 세종기지를 떠난 것은 6일 오후 1시10분께(이하 현지시간). 한국으로 돌아갈 동료들을 칠레 기지에 내려놓은 뒤 세종기지로 돌아가는 도중 집채만한 파도와 '블리자드'(눈보라)로 보트가 흔들리고 기지와의 무선교신도 거의 되지 않았다. 이윽고 오후 5시30분께 "기상 악화 때문에 세종기지로 귀환하는 것을 포기하고 인근 중국기지로 간다"는 연락을 한 직후 배터리 방전으로 무선교신은 끊기고 말았다.
이들은 교신이 끊기자 더 이상 바다에서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넬슨섬 부근 해안으로 올라갔다.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보라와 추위를 이겨냈다. 탈수를 막기 위해 얼음을 깨서 입안에 넣으며 보트 비상식량 박스에서 꺼내온 초콜릿과 초코파이를 먹었다.
이번이 세종기지 2번째 근무로 남극 베테랑인 강 반장은 "잠이 들면 죽는다"며 김 연구원과 최 대원을 계속 흔들어 깨웠다. 이들의 조난 소식을 전해들은 러시아 칠레 중국 아르헨티나 등 각국 기지 대원들은 즉각 수색 및 구조활동에 들어갔다. 중국 기지는 설상차로 육상 수색을 벌여 국내 대원들의 물품으로 추정되는 배낭 2개를 발견, 수색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러시아 아르헨티나 대원들은 고무보트와 쇄빙선을 타고 해안 주변 수색에 나섰다. 러시아 수색대가 8일 오후 2시께 넬슨섬 북쪽 해안에서 실종된 고무보트용 압축공기통을 발견하면서 수색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결국 칠레 공군이 헬기를 이용, 6시간만인 이날 오후 8시20분(한국시각 9일 오전8시20분)께 이들을 발견, 칠레공군기지로 이송하면서 생환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대원들이 입은 방한복도 이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밑거름이 됐다. 대원들은 고어텍스로 만든 의복과 점퍼를 입고, 그 위에 강한 보온력과 방수효과가 있는 상하일체형 구명복을 입고 있었다. 구명복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최소 15분 이상 물 위에 뜰 수 있게 해주었고 방한복은 남극의 강추위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도록 했다.
실종기간 중 호전된 현지 기상조건도 구조에 도움을 주었다. 김현영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운영실장은 "외국 기지 대원들이 수색을 하는 동안 초속 20m에 달했던 강풍이 초속 10m로 줄어들었고 시야가 좋아졌다"며 "하늘이 도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강 반장 등은 9일 오후 세종기지에 무사히 귀환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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