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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생태유아공동체 본산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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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생태유아공동체 본산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입력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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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부산대. 교정 곳곳에서 어린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는 세 살짜리 25명이 놀고 있었다. 15명은 낙엽을 그러모아 서로에게 뿌려대며 깔깔대고 4명은 가는 나뭇가지로 흙땅에 그림을 그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6명이 누워 햇볕을 쬐고 있다.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모두 밝고 건강해보였다. 아이들 곁에는 어른 두어 명이 자리잡고 놀이를 함께 하거나 햇볕을 쬐는 어린이 옆에서 "햇볕을 느껴보세요. 잠들지 마세요"하면서 명상을 지도했다.조금 떨어진 사범대 앞 바위 모듬 위에서는 조금 큰 여섯살배기들이 모여 뛰어놀고 있었다. 1미터 높이는 됨직한 바위지만 성큼 성큼 잘 건너고 있었다. 다섯 명이 노는데 한 명이 다가와 "나도 이 놀이 가르쳐주라"고 말하며 섞여 든다. 이들이 하는 놀이는 '포켓몬 놀이'. 포켓몬의 등장인물을 흉내내며 도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는 아이들 몇이 비닐봉투를 들고 호랑가시 나뭇잎을 뜯고 있다.

이들은 모두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원아들로 지금 '산책 활동'중이다. 오전 10시30분 정도에 시작된 산책 활동은 30분에서 1시간 30분까지 아이들 재량껏 이뤄지는데 이렇게 실컷 뛰고 놀고 들어온 아이들에겐 점심이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점심 반찬은 계란말이와 우엉조림 김치 콩나물국.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김치를 씻어주는 것만 다를 뿐이다. 땀흘려 놀고 들어온 아이들은 밥을 잘 먹는다. 다 먹었다고 배식대에 내려놓는 아이들 밥 그릇에는 남은 음식이 전혀 없다. 어린이집 조리사 조희야(39)씨는 "처음에 들어온 아이들은 밥을 남기기도 하는데 두어달만 지나면 편식이 전혀 없어진다"고 자랑한다. 이곳의 음식은 모두 유기농산물로 만든다.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은 지난해부터 전국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생태유아공동체의 본산이다. 95년 처음 생겨난 후 어린이를 자연 속에서 활발하게 키우자는 교육철학을 실천함으로써 생태유아공동체와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생태유아공동체는 어린이들을 잘 먹고 잘 뛰어 놀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유치원 어린이집 모임으로 2002년 3월에 부산·울산 지역 생태유아공동체가 생겨난 데 이어 올해 들어 서울 경기 지역의 수도권 생태유아공동체, 광주 생태유아공동체가 탄생했다. 현재 경남과 대구 지역에서도 생태유아공동체가 창설을 준비중이다. 부산·울산 공동체에는 95개, 수도권 공동체에는 50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가입해 있다.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는 이들의 교육활동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6월 창립됐다.

생태유아공동체가 지향하는 유치원·어린이집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연과 놀이와 아이다움을 되찾아준다'는 것. 이 때문에 생태유아공동체에 소속된 유치원·어린이집은 자연속에서 뛰어놀게 하는 바깥놀이와 텃밭 가꾸기를 필수로 하게 하며 음식은 유기농으로 재배된 것만을 먹인다. 아이들은 체험하면서 스스로 배우며 교사들이 주입하는 학습 활동은 극도로 배제된다.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은 오전 7시30분에 문을 연다. 일찍 회사에 가야 하는 부모를 배려한 개원 시각이다. 이때부터 10시까지는 실내서 편안한 활동을 하거나 실내놀이를 한다. 10시에 간식을 먹고는 바깥으로 나간다. 어린 아이들은 부산대 교정에서 놀지만 큰 애들은 뒤에 있는 금정산까지도 올라간다. 갈 곳은 어린이들 스스로 정한다. 교사는 배낭에 마실 물과 간단한 먹을 거리, 약 등을 챙겨가지만 아이들의 조력자일뿐 아이들을 몰아가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가면서 어른을 만나면 인사도 하고 길을 건너며 차를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자연스레 배운다. 여름이면 계곡에 들어가 가재도 잡는다. 자연의 변화와 나무 이름 같은 식생에도 익숙해지고 산을 타며 스스로 위험에 대처하는 법도 배운다. 어린이집 자원봉사자로 어린이들을 지키고 서있던 김영자(52·부산 연제구 연산2동)씨는 "요즘 아이들은 갇혀 사는데 이 아이들은 이렇게 뛰어노니 천국에서 산다"며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체득하는지 잘 다치지도 않는다"고 일러준다.

이곳에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와 오래된 아이가 표가 난다고 한다. 음식을 가려먹는 것도 그렇지만 처음 들어온 아이들은 산책활동에 나가도 개미를 모질게 밟아 죽이거나 다람쥐한테 돌을 던지는 등 자연을 못살게 한다는 것. 하지만 바깥놀이가 오래되면 다람쥐가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본 아이가 "쉿"하면 아이들이 숨죽이고 다람쥐의 행동을 관찰하기에 이른다고. 나뭇잎을 따면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자연 속에서 지내다 보면 아이들은 궁금증도 많아진다. 교사들은 일일이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을 적어온 후 어린이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스스로 백과사전을 뒤져보게 한다.

점심을 먹고는 3,4세 어린이는 오후 1시30분까지 잠을 자지만 5,6세들은 어린이집 마당에서 논다. 어린이집 마당에는 가운데에 커다란 황토산이 있다. 임재택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흙장난 물장난 불장난인데 흙장난을 하면 아이들의 손감각이 발달한다"며 어린이들을 위해 매년 초에 사람 키 높이로 몸에 좋은 황토흙을 쌓아놓는다고 했다. 황토 흙산 옆에는 호미 삽 등과 함께 못쓰는 프라이팬 국자 체 냄비 등이 담겨 있는 도구함이 있다. 거기서 그릇을 가져다가 아이들은 흙을 체치기도 하고 조각품을 만들기도 한다.

텃밭을 가꾸는 것도 5,6세 어린이들만의 특권. 대신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형님'들이 만든 텃밭을 찾아 싹이 나고 크는 것을 관찰하는 재미를 본다. 텃밭은 어린이집 건너편의 외국인 교수사택 바로 앞에 있다. 반별로 한 고랑씩을 맡아 배추 고추 상추 무 파 등을 키운다. 퇴비도 직접 만드는데 이 때문에 음식 찌꺼기에 생겨나는 구더기나 땅속에서 나오는 지렁이를 만지는 것도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다.

세시풍속에 따라 활동이 달라지기도 한다. 설이나 대보름 때면 그에 맞는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한다. 최근에는 메주를 쒔는데 장 잘 담그는 할머니 자원봉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서 콩을 삶고 아이들이 콩을 주물럭거려 메주를 만들었다. 전도 부쳐서 아이들은 들락거리며 전도 얻어먹고 콩 삶은 것도 주워먹으면서 먹는 것과 일이 함께 하던 전통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날 만든 메주는 현재 어린이집 방에 걸려 내년 정월 아이들이 먹을 된장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어린이들의 바깥활동이 많다 보니 교사들도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일반 유치원에서 4년간 재직하다가 이곳으로 4년전 온 진보경(31) 교사는 "다른 유치원에서는 교사가 공주인데 여기서는 일꾼"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인 만큼 교사들의 건강도 좋아져서 배은진(34)교사는 "친구들과 산에 가면 다들 그만 쉬자고 해도 나는 더 가서 쉬자고 하는 것 보면 몸이 좋아진 모양"이라고 웃는다. 임 원장은 "자연에 저렇게 많은 교재가 있어서 아이들을 튼튼하게 자라게 할 수 있는데 이 교육이 널리 퍼지지 않는 것은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며 "생태유아교육은 유치원 중심이 아니라 어린이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교육관"이라고 요약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생태유아교육의 선구자 임재택 교수

부산대 유아교육과 임재택(54)교수는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원장이자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생태유아공동체 회장이다. 그 없이는 생태유아교육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는 생태유아교육의 본질을 한마디로 "양계닭 같이 크는 아이들을 토종닭 같이 키우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사범대 출신으로 79년부터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기존 교육학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에서는 어린이를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인력으로 보고 성장 발달을 중시해 더 빨리 더 많이 지식을 섭취하게 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게 하자는 것이 교육 목표였는데 과연 이것이 옳으냐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 돌짜리를 빨리 다섯 돌 짜리로 만들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고 조기학습을 하는데 이것이 과연 교육인가 싶었다. 이런 잘못된 교육 때문에 한국에서는 많이 교육받을수록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많이 배울수록 못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까지 이른 그는 "우리 전통에서는 평생 어린이의 품성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세살 짜리는 세살 짜리로서 행복을 느끼며 살도록 유아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린이가 성장을 재촉받지 않고, 자본주의의 인적 자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고귀한 생명체로서 존귀한 대접을 받으려면 그는 친구들과 더불어 자연과 하나되는 생태교육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결국 95년에 주위를 설득해 대학 부설 어린이집을 만들었고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텃밭 가꾸기, 산책활동, 명상, 감각놀이 같은 교육프로그램과 할머니 할아버지 자원봉사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인·아동 상호프로그램'까지 다양한 교육안들이 나왔다. 교육적 효과도 입증할 수 있었다.

생태교육의 동료들은 교육학계보다는 종교계와 생태학자들 가운데 더 많다. 임 교수는 "법륜스님과 도법스님 이현주 목사 김종철 선생 박기호 신부님이 나의 스승이자 동료"라고 말한다.

기존의 교육학이 "부자되고 승자되자는 법만 가르친다"고 비판하는 임 교수는 "천심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전통 교육에 따라 아이들의 천심을 죽이지 않는 교육을 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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