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학파 1세대'로서 34년간 강단을 지켜온 김병주 교수(64·경제학)가 내년 2월 퇴임을 앞두고 9일 마지막 강의를 했다. 명강의로 유명한 김 교수는 고별 강의를 마친 뒤 교수연구실에서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정부 눈치 안보고 할말 다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으니 참 행복했다"며 "누에가 번데기가 됐다가 다시 나방이 되듯이 이제 또 한단계를 지났다는 느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1970∼80년대 경제정책을 주도한 남덕우·이승윤·김만제씨의 뒤를 잇는 서강학파 1세대의 '막내'격인 김 교수는 "학문적 의미의 학파는 없었고 학풍은 있었다"며 "시장중시 경제운용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 바로 서강학파"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91년에 서강대 경제정책대학원을 만든 것도 당시 좌파 학생들에게 시장경제가 왜 좋은지를 교육하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평소 "경제학=실천과학"이라며 현실참여를 강조해온 김 교수는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장, 금융통화위원, 금융개혁위원회 부위원장,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 은행경영평가위원장,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장 등 다양한 대외활동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은행법 개정, 금융제도 개혁 등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김 교수는 "인접 학문에 관심을 갖고 편협되지 않게, 이론과 시장이해·제도이해에 각각 3분의1씩의 비중을 두는 자세를 가져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풍자와 은유가 깔린 날카로운 컬럼으로 역대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온 김 교수에게 현 경제팀에 대한 당부를 부탁하자, 대뜸 "우리 정부에 과연 경제팀이 있는지, 있다면 한 덩어리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고도성장과 권위주의 탈피, 환란극복 등이 과거 정부의 과제였다면 지금 정부는 중국에 대한 대응과 통일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잠재성장률을 키우기 위해 노동시장 안정과 투자의욕 고취, 합리적 소비정착 등 법질서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사심을 버리고 자신의 지지세력에게 '배신자'라는 욕을 먹더라도 경제질서를 바로 세워준다면 지금이라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두환 정권시절 정책의 경직성을 빗대 '외곬수'라는 칼럼을 썼다가 해당 신문사가 혼쭐이 나는 등 숱한 파장을 일으켰던 김 교수는 그동안의 신문 기고 400여편 중 100편 정도를 추려 내년에 '글모음집'을 내고, 대외활동 경험담을 모아 '체험적 금융개혁론'을 펴낼 계획이다.
김 교수는 "나이 드는 것은 '녹슨 배'가 돼가는 기분이지만 지금이야말로 과거 어느 때보다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5∼10년이 지나서도 매섭고 교훈적인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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