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명의를 빌린 불법 명의신탁을 통해 매입한 토지에 대해 법원이 편법 매수자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이번 판결은 투기·탈세 등을 목적으로 부동산실명제법을 위반한 사람으로부터 아예 명의를 도용해 매입한 땅을 빼앗아 버리는 강경한 처방을 내린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0부(조희대 부장판사)는 9일 정모(65)씨 등 4명이 "윤모씨에게 돈을 주고 명의를 빌려 H사찰로부터 부동산을 산 것인 만큼, 윤씨 명의의 땅을 물려받은 피고들은 원고에게 소유권을 넘겨야 한다"며 김모씨 등 4명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각하하고, H사찰을 상대로 낸 소송은 원고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판례는 명의신탁한 부동산이라도 형사처벌이나 과징금 처분과는 별개로 실질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소유권을 인정해왔다.
재판부는 "명의신탁 약정이나 명의신탁 등기는 반사회적 법률행위로서 무효인 만큼,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는 민법상 '불법원인급여(不法原因給與)'에 해당한다"며 "부동산실명제법은 과징금이나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명의신탁자에게 민법상의 구제를 허용하게 되면 부동산실명제의 근간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명의신탁 부동산을 '도박판의 빚'처럼 반환을 구할 수 없는 불법 재산이전(불법원인급여)으로 해석한 것으로 상급 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정씨 등은 2000년 5월 윤씨 명의를 빌려 H사찰 소유의 부동산 약 3,000㎡을 매입했으며, 윤씨가 사망해 부동산이 윤씨의 부인과 자녀 등에게 이전되자 소송을 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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