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자리잡은 마을숲을 금주 답사지로 정했다.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순천 낙안읍성마을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조용하고 아늑한 전통 농촌마을의 경관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온 곳이다.외암마을은 집집마다 겨울맞이가 한창이다. 아낙네들은 연방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겨울 내 밥상을 책임질 김장을 담그고 나이 드신 남정네들은 한 해 동안 비바람에 색이 바랜 초가지붕을 떨어내고 새로 잇는다. 도시 아파트 생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정겨움이 묻어난다.
16세기 말 예안 이씨 이사종이 참봉 진한평의 장녀와 혼인하여 이 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예안 이씨 집성촌이 형성됐다.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은 18세기 초 이곳에 살았던 유명한 성리학자 이간 선생의 호인 외암(巍巖)과 관련있는 것으로 얘기된다. 그러나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에 따르면 선생의 호를 정하기 이전부터 마을이름이 외암이었다고 하니, 이간 선생이 도리어 마을이름을 빌린 셈이다. 아산시가 발행한 「외암민속마을」(2002)에 의하면, 원래 외암마을은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 하여 '오양골'이라고 하였는데, 이 '오야'가 변하여 '외암'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암마을의 숲은 마을을 구성하는 한옥과 초가집,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허리높이의 돌담과 어우러져 있다. 특히 밭에서 나온 허드레 돌들을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담과 그 사이로 이루어진 5.4㎞의 돌담길은 어떤 마을서도 볼 수 없는 공간이다. 집집마다 돌담을 쌓되 안이 들여다보이고 집집마다 돌담으로 막혀 있되 그로 인해 생긴 돌담길이 마을의 모든 집을 이어주는 이중 구조였다. "마을에 찾아온 엿장수가 열 번을 헤매다 겨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외암민속마을 보존회 이택종 사무국장의 말에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마을 경관에 어울리는 숲은 수종과 크기를 잘 선택해야 하고 사람의 손이 가되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마을 들머리에 있는 소나무 마을숲은 다소 허한 느낌이 준다. 마을 왼쪽을 가려주는 소나무 마을숲은 과거보다 축소되어 마을과 분리된 느낌을 주고 마을숲 주인인 소나무는 쇠약해진 상태였다.
반면 고택과 초가집에 어울리는 정원숲은 보는 이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마을 끝자락에 자리잡은 송화댁의 소나무정원과 산에서 내려와 굽이굽이 정원을 가로지르는 작은 냇물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선비의 마음을 들려준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교수댁정원의 3∼4평 남짓한 연못과 그 위를 낮게 건너지르는 소나무 한 그루는 사람의 마음을 머물도록 하는 힘이 있다.
또한 소나무, 감나무, 고욤나무, 호두나무가 심겨진 늦가을 마을 정경은 가을 동화를 연상케 한다. 최근 들여와 심은 일본향나무가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마을과 하나가 된 숲은 제2회 전국 아름다운 마을숲에서 왜 대상을 받았는지를 알게 해준다.
과거 우리 선조의 삶을 현재까지 이어주는 민속마을과 그 마을과 함께 수백 년을 함께해 온 마을숲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민속자료이며 자연유산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문화재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끼지 않는다면 제대로 남아날 리가 없다. 다행히도 외암마을 주민들은 숲과 마을을 잘 관리하고 있다. 마을숲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믿음직스럽다.
배 재 수 임업연구원 박사 forestor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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