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세종기지 대원들의 조난사고를 계기로 극지 연구 및 개발을 위해 남·북극에 설립된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의 어려운 연구환경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는 남극대륙 북쪽 사우스셔틀랜드제도의 킹조지섬 바턴반도에 '남극 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와 노르웨이령 스발바드군도 스피츠베르겐 섬의 니알슨에 '북극다산과학기지'(다산기지) 등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세종기지에만 연구원이 상주하고 있다.
1988년 세계 18번째로 남극에 설립된 세종기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하루 하루의 생존 자체가 혹독한 자연과의 싸움이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23도이고 특히 겨울철(6∼8월)에는 하루종일 캄캄한데다 체감기온이 영하 40∼50도로 떨어지고 초속 40m 강풍이 불곤 한다. 특히 이곳에서 폭풍설인 블리자드(Blizzard)의 공포가 엄습하는 한겨울을 포함해 1년간 세종기지에 상주하는 월동대원들의 어려움은 상상 이상의 수준이다.
뼈 속을 파고드는 추위보다 대원들을 더 괴롭히는 것은 고립에 따른 외로움. 세종기지 근처에는 아르헨티나 등의 상주기지들도 있지만 육지와 연결돼 있지않다. 그러다 보니 대원들은 기지 안의 한정된 공간에서 동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지 못한 채 수개월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기 월동대에 참여했던 한 대원은 "비록 2배 이상의 월급을 받아 1년만 고생하면 목돈을 만질 수 있지만 남극은 '감옥 아닌 감옥'"이라며 "좁은 공간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과 생활하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극도로 곤두선다"고 털어놓았다.
예산부족 등으로 생명과 직결된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점도 대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각국이 남극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1950년대 이후 13건의 대형사고가 발생했지만 이번 사건은 유일하게 발생한 '고무보트 조난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그만큼 장비가 열악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실제로 남극에 진출한 18개국중 쇄빙선을 갖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 뿐이며 특히 세종기지와 함께 킹조지 섬에 자리잡은 8개국 중 고무보트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현재 연간 30억원인 세종기지 예산 현황으로 한번 임대(40일 정도)에 10억원이 소요되는 쇄빙선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고무보트 조차 단 3척뿐이어서 이번 조난 사고 때 우리측은 완전히 손을 놓고 '외부구조'에만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어서 이번 사고가 이전부터 '예고된 재난'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정부는 사고가 나자 부리나케 9일 쇄빙연구선 조기투입, 통신장비 현대화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1,000억원대의 쇄빙선 투입은 2007년 이전에는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눈 가리고 아웅식'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이번 조난 사고를 계기로 남극 제2기지 건설 추진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효과적인 남극 연구를 위해서는 현재의 세종기지보다 고위도 지역에 제2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며 "기획예산처 등과 협의해 빠르면 2005년부터 총 7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제2기지 건설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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