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실시된 러시아 4대 국가두마(하원) 선거에서 크렘린계인 통합러시아당이 공산당을 3배 가까운 격차로 따돌리면서 압승했다. 블라디미르 푸틴(51) 대통령은 강도 높은 개혁정책을 지속할 기반을 마련한 것은 물론, 내년 재선에 이어 개헌을 통해 3선까지 노릴 수 있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대해 "민주주의 강화를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환영했다.푸틴의 압승
8일 98%까지 진행된 개표 결과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통합러시아당이 정당별 투표에서 37.1%의 지지를 얻어 최대 야당인 공산당(12.7%)을 크게 앞섰다. 통합러시아당은 대통령이 속한 공식 여당은 아니지만 푸틴 지지자로 채워진 '사실상의 여당'이다. 공산당은 역시 크렘린계인 자유민주당(11.6%)의 약진에 움찔하며 한 때 3위로 밀리는 등 체면을 구겼으며, 10여년간 확보했던 하원의장 자리도 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공산당의 퇴조는 크렘린의 정치적인 계략이 먹혀 들어간 결과라고 분석가들은 지적했다. 불과 3개월 전에 창당한 조국당이 9.1%의 지지율로 4위를 차지해 5% 이상 득표한 정당에게 주어지는 비례대표 의석을 받으며 원내에 진출했는데, 조국당은 공산당의 표를 갉아먹기 위해 크렘린이 급조한 당이라는 것이다.
친 서방 정책을 주창해 온 자유주의 정당 야블로코당과 우파연합은 각각 4.3%와 4%로 5% 벽을 넘지 못하고 1991년 이후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실패,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장기 집권 발판 마련
총선 결과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푸틴이 개헌에 필요한 의석(450석 중 3분의 2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까'이다. 재선까지만 허용하는 현행 헌법은 젊은 대통령의 권력욕을 2008년까지밖에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지율이 70∼80%에 달해 내년 재선은 확실시된다.
정당별 득표율 외에 지역구 선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5% 이상을 득표한 4개 정당 중 3개 크렘린계 정당 득표율이 60%에 가까워 개헌 의석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당 득표율보다 비례대표(총 225석)로 받는 의석이 더 많고,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지역구에서도 그 이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중앙선관위의 분석을 인용해 "통합러시아당 222석을 포함해 3개 당이 297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자라는 몇 석 정도는 무소속 의원 영입으로 메울 수도 있다.
크렘린은 개헌 추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푸틴 재선 이후에 얘기를 꺼내도 늦지 않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하원 장악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이 3선 개헌은 물론 직선제인 주지사를 임명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하고 있다.
부정 선거 논란
선거운동 기간과 투표 과정에서 국영 TV 등 방송들이 야당 지도자 모습은 거의 내보내지 않는 등 편향적 자세를 취해 부정선거 시비가 일고 있다.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우리는 선거라고 불리는 메스꺼운 쇼에 참여하고 있다"며 "독자적인 개표를 하기 전에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 백악관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도 선거 결과에 대해 8일 "러시아 총선은 민주주의 원칙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등 국제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