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들 표정남극 세종과학기지 실종자 가족들은 8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샜다. 이날 오후 '8명 실종' 소식에 이어 밤 늦게 4명 생존, 1명 사망, 3명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가족들 사이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7일 세종1호를 타고 실종자 3명에 대한 구조작업에 나섰다가 끝내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연구원 전재규(27)씨의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9리 집에서는 아버지 익찬(55)씨가 애지중지하던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전씨는 "남극 도착후 전화도 하고 이메일도 3차례 보내왔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대 94학번인 재규씨는 군제대 후 서울대 지구과학물리시스템 대학원에 진학해 3학기째 지질해양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전씨는 "재규는 지도교수와 남극기지에 다녀온 선배들의 권유로 대원 선발시험에 지원, 1년간 근무한 뒤 논문을 쓸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1남1녀 중 장남인 재규씨는 영월에서 초중고교를 줄곧 1등으로 마쳤고, 서울대도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정도로 수재였다. 지도교수인 박창업(57)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재규는 늘 연구실에서 각종 실험과 전공 서적에 파묻혀 지냈던 촉망되는 과학도였다"며 애통해 했다. 다른 교수들도 "모두들 의사, 한의사가 되겠다며 수능을 다시 치를 때, 재규는 지진 전문가를 꿈꾸며 실험에 몰두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세종2호에 탔다 실종된 부대장 겸 연구반장 강천윤(39)씨는 한양대 지구해양학과를 졸업하고 92년 연구원에 들어간 뒤 매년 11월 하계 연구원으로 남극을 1개월 정도 방문한 베테랑이었다. 강씨는 99년부터 2000년 11월까지 13차 월동대원으로 자원, 지구해양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했으며 이번 17차 월동대에도 자원했다. 부인 노난숙(36·경기 의왕시 내손동)씨는 "남편은 육지에 있어 생존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들었다"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강씨와 함께 실종된 기계설비 담당 최남열(37) 대원의 부인 김성옥(35)씨는 비보를 접한 뒤 시어머니 안금풍(79)씨와 함께 남편이 보낸 이메일을 읽으며 남편의 생존을 기원했다. 최씨는 고교 졸업 후 열관리사 자격증을 따 주로 보일러 전문기사로 일해왔으며, 96년 10차 대원으로 세종기지를 다녀왔다. 김씨는 남편의 이메일을 읽다 "이 곳도 추운데 남극에서 헤매고 있을 남편은 얼마나 춥겠느냐"며 울먹였다. 실종된 연구원 김정한(27)씨의 경북 김천시 평화동 집에서 어머니 장영애(65)씨는 딸 다섯을 낳은 뒤 얻은 아들의 이름만 애타게 불러 모여있던 친척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실종됐다 구조된 진 준(29·기관정비)씨의 부인 이희순(29·인천 계양구 병방동)씨와 김홍귀(31·중장비)씨의 부인 이상희(32·인천 남구 용현5동)씨 등은 "남편들이 구조돼 다행이지만 다른 실종 대원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동료 대원들의 생존을 기원했다.
/곽영승기자 sykwak@hk.co.kr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한국해양연구원 뜬눈 밤샘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파견한 대원 8명이 실종됐다 4명이 생존하고 1명이 사망한 소식이 전해진 8일 밤 경기 안산시 한국해양연구원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잠시 안도한 뒤 다시 나머지 실종자 3명에 대한 구조작업 결과를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연구원 관계자들은 "실종자들은 꼭 살아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구원은 이날 오전 9시 남극 현지로부터 실종 비보를 처음 접한 뒤 남극기지와 연락을 취하다 오후 들어 상황이 비관적으로 흐르자 실종자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실종 사실을 통보하고, 대책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날 밤 10시28분께 세종기지의 남상헌 연구원이 연구원내 극지연구본부 김현영 극지운영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4명 생존 확인, 1명 사망" 사실을 알려오자 상황 파악에 분주하던 연구원들 사이에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TV 보도 등을 통해 생존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전화가 연구원으로 빗발치기도 했으나 연구원측은 정확한 생존자 명단을 파악 못해 당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연구원측은 국제전화, 아마추어 무선햄 등 가능한 모든 통신수단을 동원, 구조작업에 참가 중인 외국 기지들과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안산=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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