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재와 관련된 일본인 두 명이 언론에 보도됐다. 한 명은 나카무라 긴야라는 친한파 지식인이고, 다른 이는 90년 전 활동했던 오타니 고즈이라는 승려다. 그들의 행적을 보며 새삼스레 한중일 3국 간에 얽힌 불행한 근대 문화사와, 그 질긴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한국 것을 돌려드리는데 받아주시니 오히려 고맙습니다." 나카무라씨는 국립중앙박물관에 87건의 문화재를 기증하면서 미안해 했다. 기증품은 왕희손 주달 등 청(淸) 학자들이 김정희 김홍집 등에게 보낸 서간이 대부분이다. 문화가 무르익었던 19세기 초 대표적 문인들의 서체를 보여주는 고미술품이다. 한중일 문화사의 한 굽이가 반듯하게 펴지는 듯한 미담이다.
"기존의 한국 자기 800점과 이 300점을 합치면,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거의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난해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관계자로부터 들은 자랑이다. 이 미술관은 동포 이병창(李秉昌)씨로부터 세계 1급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을 기증 받았다. 이씨가 도자기들을 고국으로 보내지 않고 오사카 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일본인들도 문화재를 돌려주는 판에 동포로서 이해되기 어려운 행위였다. 한 개인이 도자 한 분야에서 그 많은 양을 가지고 있었으니, 약탈된 모든 문화재가 무릇 얼마이랴.
'오타니 컬렉션'으로 유명한 오타니는 교토 한 사찰의 주지였다. 그는 20세기 초 중국 서역의 고대 도시를 약탈했다. 당시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던 중국에는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달려들어 고대유물을 노략질했다. 오타니가 타림분지와 둔황 등에서 약탈한 진기한 문화재 중 150여 점이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소장되다가, 광복 후 한국에 남겨지게 됐다. 그 중 보존처리를 마친 천불도(千佛圖) 등 12점이 16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역미술 특별전'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1986년 한 차례 공개된 적이 있으나, 서역 문화재 전시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어서 언론도 들떠 있다.
일본에서 온 중국 서간과 일본이 놓고 간 중국 서역벽화를 보며 각국 간 문화재에 대한 원칙 부재를 생각하게 된다. 10여년 전 둔황에서 불교 미술품은 감상한 적이 있다. 그 불화·불상은 불교적 신념과 신앙에 충동 받아 제작된 것이었다. 승려 화가들이 사막 도시에서 외부와는 절연된 채 그린 순수한 화엄의 세계였다. 작품마다 숭고함이 흐르지만, 그것들은 또한 도저한 미학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작품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적 미숙이 드러나는 것도 적지 않았다.
문화재가 약탈 당해 군데군데 폐쇄된 둔황의 석굴들은 안쓰러웠다. 현재 타림분지의 황폐해진 불교 유적을 고려하면, 아무리 진귀한 것이라도 서역벽화를 본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우연히 소장하게 된 문화재라도 그것은 엄연히 일제가 저지른 국제범죄행위의 산물이다. 톱으로 벽화를 오려간 행위는 일제의 탐욕과 야만의 소산이며, 문화 파괴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리 박물관이 그 불화들을 공들여 보존처리하고 전시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재는 본래 장소에 있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 벽화들을 서역으로 돌려보냄으로써, 한중일 간에라도 약탈문화재에 대한 원칙과 선례가 세워졌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는 세계 속의 우리 것을 돌려 받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프랑스의 외규장각 고서부터 반환 받아야 한다. 이병창씨의 국보급 도자기들이 오사카 미술관에 기증되기까지 우리 당국은 무얼 했던가. 미국 타임지는 지난해 초 한국문화재 특집을 게재했다. 일본이 10만여 점의 문화재를 약탈해 갔으나, 한국정부는 반환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꼬집고 있었다. 부끄러운 문화재 정책의 현주소다. 이제부터라도 해외의 우리 문화재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반환교섭을 전개하자.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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