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은 오늘날 서유럽식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의 헌법에 명시돼 있다. 이 정교분리 원칙을 유럽에서는 흔히 세속주의라고 표현한다. 세속주의는 '국가와 공교육이 종교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흔히 정의된다. 오늘날 이슬람 사회나 극소수 근본주의적 기독교 사회를 빼고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원칙이 역사적으로 그리 자명했던 것은 아니다.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 오래도록 국가와 교회는 실질적으로 한 몸을 이루었거나, 교권과 왕권 사이의 단속적인 갈등 속에서도 최소한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교회와 국가의 이 해묵은 유착에 처음 현저한 균열을 만들어낸 것은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이다. 그 당시 교회는 혁명의 가장 큰 반대 세력이었다. 혁명은 귀족의 날개를 단숨에 꺾어버렸지만 교회는 이들보다 훨씬 완강하게 혁명에 저항했고, 절대군주나 귀족 계급이 역사의 유물이 된 뒤에도 구체제의 가치와 이익을 대표하며 세속에 간섭해왔다. 대혁명에서 시작해 1830년 7월혁명, 1848년 2월혁명, 1871년 파리코뮌을 거쳐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아름다운 시절'(벨에포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혁명의 긴 도정은 정치나 교육 같은 세속 영역에서 교회의 입김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혁명 지도자들의 무신론적 이성주의의 기세에 눌려 잠시 숨죽이고 있던 교회는 이내 전열을 정비해 속세에 손을 뻗쳤다. 프랑스에서 세속주의가 정식으로 확립된 것은 제3공화국 시절이던 1905년 12월9일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법'이 공포되고 나서다. 이후 프랑스는 1946년 제4공화국 헌법 전문에 "모든 수준의 무료 공교육·세속 교육을 조직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선언했고, 더 나아가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은 그 1조에서 프랑스가 '세속 공화국'임을 선언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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