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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아무도 원치 않는 다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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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아무도 원치 않는 다당제

입력
200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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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를 왜곡된 시장(市場)에 빗대는 일이 잦아졌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완전한 시장인데, 공급자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일을 정치인들이 벌여놓고, 국민이 하는 수 없이 따라가는 현상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 최근의 사례다. '나라를 구해달라'고 급하게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 열흘간 끼니를 끊고 국회를 마비시켰다. 주변에선 단식의 동기로 비주류·소장파의 도전, 충청권 의원들의 반란 조짐, 거물 지도자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 마련 등 다양한 요인을 꼽았다. 이 가운데 일반 시민과 관계가 있는 동기는 한 가지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은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측근 비리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국민에게 임기 중단을 경고했다. 독점 상인이 갑자기 생산중단을 선언한 것과 같다. 재신임 지지율은 높았지만, 어디까지나 강제로 수요를 창출한 셈이다.

이런 저런 일을 당하다 보니 학계나 시민운동에서 논의되는 '수요자 중심의 정치'라는 말을 이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정부, 정당, 의회 및 이익단체 등 기존의 공급자들이 임기동안 독점적으로 정치를 운영하는 '하드 폴리틱스'(Hard Politics)를 이제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눈길을 주어야 할 정치 공급자의 횡포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간의 분쟁이다. 서로에게 살수(殺手)를 겨눈 이 싸움이 계속되면, 결과로 나타날 경우의 수는 민주당, 또는 열린우리당이 망하거나 공멸하는 것 3가지 뿐이다. 또 하나는 재통합인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선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전당대회 때 박상천 전 대표는 당원들에게 "재통합론에 현혹되지 말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우리당에서도 신기남 의원이 "재통합론자는 당을 떠나면 된다"고 극언을 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양측에서 이미 영입작업이 시작됐고, 외부세력과 연대도 이뤄진 만큼 다시 합치는 작업은 헤어질 때보다 몇 십 배 어려운 일이 됐다.

민주·우리당 모두 선거에 임박해 표가 한쪽으로 쏠리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설사 지난 대선 때처럼 한쪽에 표를 몰아주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총선에서 의석 수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당구도로 치렀던 2000년 총선 때 서울에서 3,000표 미만으로 당락이 갈렸던 선거구는 10곳이 넘는다. 이런 미세한 차이는 '표 쏠림'이나 전략적 선택으로 극복될 수 없다. 결국 양당의 싸움은 제로섬(Zero-Sum)게임이 아니라 패자만 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문제는 과거 민주당의 지지층 가운데 아무도 이런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요자가 바라지 않는 분열을 하고 표를 몰아달라고 강요하는 것부터가 공급자의 일방적인 횡포다.

분당의 책임이 어느쪽에게 있느냐는 공방도 결론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누가 먼저 나가라고 했느냐는 항변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노 대통령과 신당파는 이미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분당을 통한 다당제(多黨制) 실험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이상수 의원이 "총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더 복잡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언급하며 다당제 운을 뗀 게 지난 4월의 일이다.

여권의 다당제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거대야당의 지지기반 균열, 둘째 정치 무관심층의 지지세력 편입, 다시 말해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전제돼야 했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자신이 없다면 방향을 트는 게 옳다. 지지층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게 뻔한 일을, 자기네 사정 때문에 강행한다면 그야말로 배신이 되기 때문이다.

유 승 우 정치부 차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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