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초 나는 잡지를 통해 '브레인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한 것을 알게 되었고, 곧 이어 그 놈의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았다. 그 놈은 마치 주인처럼 떡하니 내 디스켓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난 놈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속을 뜯어보았고, 물리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국내 PC 백신시장의 60%를 지배하는 베스트셀러이자 15년째 최고자리를 지켜온 스테디 셀러인 'V3'를 개발할 당시 안철수씨는 박사 과정의 의학도였다. 취미수준을 넘어 컴퓨터 세계로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던 그는 브레인 바이러스 해부에 며칠밤을 세운 끝에 퇴치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곧바로 전문잡지에 무료 공개했다.
88년7월 브레인 바이러스 박멸용으로 개발된 이 소프트웨어의 원래 이름은 '백신(Vaccine).' 컴퓨터에 임상적 컨셉트를 적용한 의학도다운 명명법이었다. '백신'프로그램은 89년 LBC바이러스 퇴치기능이 추가되면서 'V2'로 개명됐고, 예수살렘 바이러스 치료법을 담은 'V2+'를 거쳐 91년 악명높은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를 포함, 37종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V3'로 업그레이드됐다.
95년 안철수연구소 설립 때까지 'V3'는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동호회원들에 배포되던 공개 소프트웨어였다. 안철수연구소는 윈도용 'V3Pro95' 등 상용제품을 내놓았지만, 유료화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에 직면해야 했다. '소프트웨어에 왜 돈을 받나', '안철수가 돈독이 올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98년 CIH 바이러스 충격으로 보안프로그램의 중요성과 소프트웨어 유료화에 대한 인식은 점차 전환됐고, 24억원에 불과했던 안철수연구소의 매출은 이듬해 115억원으로 급신장했다.
'V3'는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외산제품의 공세를 물리치고, 일본 중국 등 해외로까지 영력을 넓혀가고 있는 간판 '토종'브랜드다. 'V3'의 성공은 애국심 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기술적 우월성의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회사관계자는 "V3를 구동시키는 엔진(워프엔진)은 특정위치검사법 특징분류검사법 등 독특한 방식을 통해 바이러스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찾아내고 있다"며 "특히 도스 윈도 유닉스 등 운영체계에 관계없이 통합엔진으로 설계되어 있어 사용자들이 업데이트하는 것도 아주 간편하다"고 말했다.
'V3'시리즈를 통해 안철수씨는 젊은 벤처리더로 국내는 물론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안철수연구소 역시 코스닥 등록 우량기업 반열에 올랐다. 안철수연구소는 내년1월 업그레이드된 V3Pro2004 제품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