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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로 보내는 편지/꽃만 보면 할머니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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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로 보내는 편지/꽃만 보면 할머니 생각나요

입력
200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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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얼마 전 화훼 시장에 들렀다가 만발한 노란 서리꽃을 보았습니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던 할머니가 생각나더군요. 파초, 나비화초, 채키화, 접시꽃, 이별초…. 당신은 꽃밭에 이런저런 꽃을 심고 정성 들여 가꾸었습니다.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의 꽃을 가꾸는 법을 배웠답니다.당신은 저의 큰 이모의 시어머니이니까 엄밀히 따지면 사돈이지요.

그렇지만 저에게 당신은 친할머니와 진배 없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제 친할머니의 그 자리를 당신께서 채워 주었지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납니다. 당신은 들에서 돌아오는 길에 "냉수 한 사발 얻어 마시자"면서 꼭 저의 집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냉수는 핑계였고 실은 바구니에 담아온 참외, 토마토, 포도를 덜어주기 위해서 였지요. "나는 많이 먹지 못하니까 그냥 받아둬."

그 뿐인가요. 당신은 목판상에 울긋불긋 물이 든 시루 떡과 각종 과일을 가득 담아 들고 왔지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당신이 가져온 먹거리는 훌륭한 주전부리가 됐습니다. 제 형제들은 서로 먼저 받으려고 쟁탈전을 벌였지요.

당신은 무척 부지런했습니다. 농사일이 바쁜 가운데도 잠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 갈잎을 끊어다가 바구니를 만들었지요. 가을이면 풀잎이나 동백나무 열매를 따서 머리 기름을 만들어 단장하기도 했습니다.

참, 당신이 김매기를 하면서 불렀던 창가는 얼마나 구성졌던지요. 동네 사람들 모두 부러워했지요.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할머니의 창법을 흉내내다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저는 할머니께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요.

그렇게 다정다감, 다재다능 했던 당신은 몇 해 전 가을 훌쩍 세상을 등졌습니다. 얼마나 슬프던지요. 저희는 꽃상여 앞에 놓인 관을 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기일이 다가옵니다. 언제 한번 찾아 뵙는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뒤를 이어 제 아버지가 세상을 등졌답니다.

아버지 기일 챙기기에 바쁘다 보니 당신의 기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나 자책이 됩니다. 할머니,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밭과 뜰을 예쁘게 가꾸고 계신가요. 활짝 핀 서리꽃 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짓던 당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할머니, 아주 많이 보고 싶습니다.

/김인식·경기 여주군 대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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