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 원주민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년 시절 에스키모 문화를 그대로 흡수한 여성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46). 방송사에서 일하며 2001년 자신이 만든 조각 세 점을 팔아, 그 돈으로 구입한 카메라로 몇 편의 단편영화와 두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 이력의 전부다. 첫 장편 '아타나주아'를 콧대높은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 그의 영화는 신인감독에게 주는 영광의 상, 황금카메라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수상은 날고기나 먹으며 손님이 오면 아내를 내어준다는 '야만'의 상징, 에스키모의 복권의 상징이기도 했다.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소박한 연기와 리얼한 화면이 특징인 '아타나주아'(Atanarjuat: The Fast Runner). 원시적 삶의 방식 혹은 원주민을 교육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아왔거나, 반대로 그들을 지나치게 신성하게 여겨왔다면, 이 영화는 매우 생경하면서도 생생한 느낌을 줄 것 같다. 너무 '생생한' 인간, 그들이 느껴지기에 2시간 48분의 제법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툴리막은 악령의 힘을 빌어 족장이 된 사우리에 밀려나고, 두 아들 '아막주아'(힘센 사나이)와 '아타나주아'(빠른 사나이), 그리고 아내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늘 찌꺼기 고기만 먹고 산다. 두 아들이 성장해서는 생활이 달라졌다. 의리있는 형제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고기도 잘 잡아 오기에 이들은 더없이 행복하다. 하지만 아타나주아(나타르 웅갈락)가 사우리의 아들 오키의 정혼자 아투아와 사랑에 빠지며 두 남자는 목숨을 건 결투를 치른다. 아타나주아가 결투에 이기고 아투아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지만, 오키의 동생인 푸야가 아타나주아의 두번째 아내가 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형제 부부가 한 텐트에 잠들었다가 아타나주아가 푸야와 아막주아, 즉 제수와 시숙의 잠자리를 목격하며 형제는 갈라지고, 여자들 사이도 벌어진다. 푸야는 오빠 오키에게 "남편이 이유없이 죽이려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오키 형제는 잠든 두 사람을 습격, 아막주아를 죽인다. 겨우 도망친 아타나주아는 빙판을 달린다, 벌거벗은 채.
구질구질한 몸 싸움 없이 그저 주먹으로 급소인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말 그대로 '골 때리는' 간결한 에스키모식 결투부터, 고기를 많이 잡은 자가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는 분배 법칙, 긴 겨울 사냥 동안 한 부인은 집에서 아이를 지키고 또 다른 부인은 사냥을 따라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부다처제' 등 에스키모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쫓다 보면 어느새 생경스러움을 넘어서 '사람'이 보인다.
영화의 압권은 벌거벗은 아타나주아가 전라로 빙판을 달려 도망가는 긴 장면이다. 너무 맑아 살이 벨 것 같은 얼음판 위로 45초간 달리는 아타나주아의 모습은 '생존 본능'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단어를 실감케한다. 또 오키에게 깃든 악령을 몰아내는 장면은 판타지영화보다 더 판타스틱하다. 쿠눅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인 고 폴 아넬리크 아팍은 에스키모 노인들의 증언을 채집해 이야기를 구성했고, 90%가 에스키모인 스태프들은 북극에 텐트를 치고 6개월간 영화를 촬영했다. 28개 영화제에 초청받은 영화답게, 고요하게 시작해 격정과 감동을 남긴다. 15세 관람가. 19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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