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지금은 없어진 일본 4대 증권사 중 하나에서 채권 연수를 받을 때의 일이다. 강사진은 정년을 앞둔 베테랑 증권맨들로 아침마다 경제신문을 갖고 와서 수업 전에 읽고 있어야 했다. 귀찮게 생각하고 있던 참에 어느 날 아침 강의실에 평소보다 일찍 들어와 보니 그해 말에 정년을 앞둔 강사 한 분이 책상에 엎드려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계셨다.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니 일본 경제신문을 펴놓고 중요 경제 지표나 시장 지표들을 돋보기 너머로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 넣고 있느라 뒤에 누가 온지도 모르고 있었다. 증권회사에서 보낸 수 십 년간 빠뜨리지 않는 일과라는 얘기였다. 더욱 놀라운 건 매일 매일 체크하는 지표들이 거의 70∼80개에 육박한다는 사실이었다.감동을 받고 서울에 돌아온 이래 흉내를 내 보았지만 70∼80개의 지표를 매일 정리하는 것은 도저히 인내심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었다. 줄이고 줄이다 보니 투자가라면 신문에서 하루 한번 정도는 '눈도장'을 찍어야 할 최소한의 지표들을 '비행기 지표'라는 이름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기본 아이디어는 주식 시장을 한 대의 비행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도에 해당하는 것은 지수이다. 그 전날의 지수와 이동 평균선들을 비교해보면서 정배열 상태인지 역배열인지, 경기 지표로 불려지고 있는 120일 이동 평균선은 어떤지 살펴본다. 이들을 통해서 지금 비행기(주식 시장)가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지 하강기류에 눌리고 있는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시가총액은 비행기의 무게에 해당한다. 시가 총액이 커지면 비행기 무게가 늘어나고 상승탄력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시가총액과 국내총생산(GDP)의 비교를 통해서 실물 경제에 대한 주식 시장의 상대적 비중을 알 수 있다. 고객 예탁금은 비행기의 연료 게이지로 볼 수 있다. 고객 예탁금은 증시의 매수 대기 자금이기 때문에 이 숫자가 커지면 그만큼 연료가 든든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비행기의 두 엔진에 해당하는 실물경기와 금리 동향이다. 우리나라에서 실물경기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환율의 움직임을 들 수 있다. 환율은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유가와 반도체 가격 역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항로의 날씨에 해당되는 세계 시장 동향, 특히 뉴욕시장의 다우와 나스닥 지수 그리고 일본의 닛케이 지수 정도는 체크해 둔다. 심각한 투자자라면 이 정도는 기본의 기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년을 몇달 남기고도 아침마다 돋보기 너머로 숫자들을 베껴 적으며 기본기에 충실하던 늙은 증권맨의 프로 정신을 우리도 항상 견지해야 한다.
/제일투자증권 투신법인 리서치팀장 hunter@cjcyb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