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준하(張俊河) 선생의 장남 호권(55)씨가 1979년 한국을 떠난 뒤 24년 만에 영구귀국했다.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부인 신정자(54)씨와 함께 입국한 호권씨는 "군부 정권과 손 잡지 않은 현 정부 하에서 아버지의 못 다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영구 귀국을 결심했다"며 "언제나 마음 속으로 떠나지 않았던 조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호권씨가 한국을 떠난 것은 사상계 전 발행인인 고 장준하 선생이 75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나서 4년 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 해 저도 의문의 테러를 당해 3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는 압력이 끊이질 않았죠. 직장을 구하려 해도 '생활비는 줄 수 있지만 일자리는 줄 수 없다'며 거절하더군요."
호권씨는 당시 비자 발급이 필요 없던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혼자 몸을 실었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8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다시 기관에 끌려가 당시 학생운동 관계자들의 신원을 밝히라는 심문을 받는 등 군부 정권의 핍박이 여전하자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여기고 눈물을 삼킨 채 다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싱가포르에서 호권씨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93년 아내 신씨와 두 딸이 싱가포르로 건너왔을 당시에도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어려운 생활보다도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라는 교민들의 시선이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호권씨는 현재 '디지털 사상계'를 운영 중인 김도현씨 등과 함께 70년 김지하의 '오적' 필화 사건으로 사실상 폐간된 사상계를 내년 총선 전에 복간할 계획이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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