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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깨끗한 정치"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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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깨끗한 정치"는 가능한가

입력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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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수 신문에 실린 정치 칼럼을 내내 공감하면서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름기 번지르르하고 뻔뻔한 얼굴의 썩은 정치인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표현 때문이었다.사람에 따라 얼굴에 기름기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건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상징적 표현일 거라고 애써 이해하면서도, 칼럼 필자가 내내 차분한 어법으로 칼럼을 써 나가다가 막판에 그렇게 비분강개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한국 정치가 워낙 썩었기 때문에 정치인 이야기를 하면서 핏대를 올리는 건 당연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정작 궁금하게 생각하는 건 한국의 유권자들이 과연 '깨끗한 정치인'을 원하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유권자들이 '깨끗한 정치인'을 원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유권자들이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한 진보 정당의 후보들을 잔인할 정도로 외면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당위적인 말만 하지 말고 진실을 직시하자. 유권자가 의원에게 가장 기대하는 건 지역발전을 위한 로비스트 역할이다. 물론 정치적 격변기에 그 어떤 바람이 불어 정치 신인들이 대거 당선된 적도 있기는 하지만, 그 때에도 살아남은 '썩은 정치인들'의 수가 더 많았다는 걸 잊어선 안될 것이다.

우리는 남 이야기를 할 때엔 '썩었다'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지만, 어느 정도 썩지 않으면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한국판 '게임의 법칙'을 자신이 따를 때엔 자신에 대해 엄청난 포용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 기준을 정치인들에게도 적용한다. 전국적 차원에선 정치인이 썩었다고 욕하면서도 자기 지역 의원만큼은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중앙에서 예산 따오고, 기업체 유치하는 탁월한 로비술을 보여줄 걸 원한다.

유권자들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 그런 로비술에 뛰어난지 귀신같이 알고 있다. 썩었건 썩지 않았건 정관계에서 한 자리 했던 '거물'을 선호한다. 물론 평판이 워낙 좋지 않으면 '거물'이라도 물리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유권자들이 깨끗한 걸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회의원 뜯어먹으려는 유권자들은 좀 많은가. 물론 유권자들은 자기들이 뜯어먹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때 표를 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수만명의 유권자들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 의원에겐 그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데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어디에선가 그 돈을 조달해야만 한다. 유권자들이 '깨끗함' 보다는 '최소한의 예의'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의 법칙'을 그대로 두고 정치가 깨끗해지고 투명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인의 부패는 그런 '게임의 법칙'의 거울일 뿐이다. 그 법칙을 바꾸지 않고 아무리 인적 청산을 외쳐대봐야 그게 사실상 신구(新舊) 세대간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인 욕을 열심히 하는 만큼 그런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는 노력도 같이 해보자. 언론이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제시하고 실현하는 데에 앞장서면 좋겠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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